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안민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게헨나>가 출간되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상상력의 파고를 보면 황홀함이 느껴지고, 언어의 숲을 뚫고 나가는 저돌적인 돌파력을 보면 아찔한 느낌”이라는 황치복 평론가의 해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개념들의 어울리고, 정반대의 사건들이 충돌하며, 낯선 장소들과 사물들이 포개지는 독특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공간은 파국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곳이다. “유계幽界”, “실크로드”, “갠지스강”, “블랙홀”, “화이트홀”, “사건지평선” 등의 근원적 의미를 지닌 공간을 가리키는 시어들을 통해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참혹한지, 그 참혹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천체의 움직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인의 우주는 인간 개개의 삶에 뿌리내려 있다. 안민의 시에서는 “우울은 화이트홀까지 계속될 테지만 그곳은 천체망원경으로도 관찰된 바 없다 그러나 소멸 안쪽에서도 움찔대며 태어나는 입자들, 흘러가는 나는 사건지평선에 근접해 있다”(「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내가 속한 별은 어두운 구석이고 네 혈액형은 람다(,Λ)」), “음률은 대체로 기차의 내면에 속한다 음률은 예술을 위해 어느 구간에선 천천히 죽어가고 어느 구간에선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흐느낀다”(「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와 같이 “소멸”하고 “태어나는” 무수한 세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개인의 미시적인 삶은 무수한 “입자”들의 충돌로 말미암아 거시적인 우주가 되고, 이는 “혁명을 꿈꾼 이들”(「시안」)의 “음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윤리를 증오한다고 외쳤지만, 비겁하게 윤리와 타협하며 여기까지 온 것”(「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이라는 시인의 외침은 고착화되고 변질되어버린 세계의 “윤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하고 파멸하면서 새로운 “윤리”의 세계를 마주하려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목차

제1부

나와 나의 분인分人과 겨울에 갇히던 ─ 12
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 ─ 14
피아노 ─ 16
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 ─ 19
어둠론 ─ 34
큐브 ─ 36
당신을 향해 달리는 당신 ─ 38

제2부

사춘기에서 그 다음 절기까지 ─ 42
계단 ─ 45
도로적道路的 강박관념 ─ 48
속화俗畵의 발 ─ 51
바라나시 겅가 ─ 54
뼈의 기원 ─ 56
사막의 풍경 ─ 60
제례의 구간 ─ 62

제3부

모래시계 ─ 70
스노우 볼 ─ 72
게헨나 ─ 74
유리 고양이 ─ 76
다음에서 머리카락을 바르게 설명한 것을
전부 고르시오 ─ 78
실조 ─ 81
안개보다 더 흐린 새벽의 레퀴엠 ─ 84
어제 ─ 86
천칭좌―Zubenelgenubi ─ 87

제4부

최초의 정의 ─ 96
그림자극 ─ 98
눈 없는 얼굴 ─ 101
낯선 유전자 Pool로 ─ 103
한 마리 사막 ─ 105
사이클에 관한 견해 ─ 107
시안 ─ 110

▨ 안민의 시세계 | 황치복 ─ 129
[ 시인의 말 ]

기억 앓는 곳마다 흐르는 잿빛 입자들,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나의 얼굴이
나를 보고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