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부끄러운 밑천』은

내 첫 시집제목이다

 

어제 『부끄러운 밑천』 200부를 또 받았다

이래저래 나눠주다 보니 모자라서

보름 전에 130만원 주고 주문했던

 

이미 나누어준 300권의 ‘부끄러운 밑천’은

1년 반 동안

어느 곳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바람으로 눈물을 말려야 하는

울음 참아내다 목젖이 아픈

사랑을 위해 사랑을 끝내야 하는

추운 가슴들에게

홑이불 한 장 치레도 못하고

하릴없이 먼지나 쌓고 있을까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읽을 때나

대학시절 첫 시를 쓸 때나

시는 늘 내게 부끄러움을 들이민다

 

 

 

(약력)

 

김상출

1955년 출생.
2011년 『영주작가』로 등단.

2017년 시집 『부끄러운 밑천』.

2017년 교사 정년퇴직

 

 

 

 

 

 

 

 

(해설)

 

성찰의 시간과 사람의 깊이

 

권서각(시인·문학박사)

 

 

 오랜만에 기꺼이 시집 발문을 쓴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모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완성도 높은 시편들이라서 흐뭇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소중한 시집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시인께 고마움을 표한다. 한편으로는 시인의 시에 사족을 단다는 것이 시인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다만 몇 편의 시에 사족을 보탬으로써 이 시집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한국작가회의 영주지부에서 내는 문집 <영주작가>는 신입회원을 영입하기 위해 상금도 없는 신인상 작품모집을 한다. 몇 년 전 <영주작가>에 모처럼 신인상 당선자가 나왔다. 수준급의 시로 당선된 신인상 수상자는 신인이라기에는 숙성된 목소리의 시를 쓰는, 경남 말씨의 중년 남자였다. 신인상을 계기로 만난 시인은 너무도 스스럼이 없어서 금방 몇 년을 사귄 친구와 다름이 없었다. 술잔이 몇 차례 오고가다가 취흥이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남도소리, 판소리 가락은 더욱 사람 냄새를 느끼게 했다. 일언이폐지하고 이거 대물이로구나, 싶었다. 그 뒤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처음 느낌에서 조금도 더하고 뺄 것이 없었다. 필자가 아는 시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김상출 시인이 한반도 남쪽 거제에 살다가 느닷없이 경북 최북단 소백산 아랫마을까지 와서 이곳 사람이 된 것도 극적이다. 고향 거제에서 불현듯 그야말로 불현듯 모든 걸 떨쳐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 새로운 곳에 살겠다고 찾은 땅이 그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곳 소백산 밑이라는 것이다.

  오자마자 자기와 이름이 비슷한 영주작가의 김우출을 만나 내가 형이니 니가 형이니 하게 되고 그와 비슷한 연배의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아래 시에 등장하는 우출, 석기 그리고 이 시에 이름은 없지만 베트남에서 국어선생 하던 만웅이 그들이다. 이 시의 부제 베트남 송신은 아마 늘 자주 만나다가 베트남으로 간 만웅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란 의미일 것이다. 김상출은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다.

 

어제는 반갑구로 봄비 촐촐히 내려주셔서

5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명퇴한 우출에게 전화 걸어 머하노 캤더이

과수원 나무 심는다 카기에

비 맞아가믄서 캤더이 그래 카데요

막걸리 한 잔 받아주까 카이 좋제 그카기에

석기에게 전화 걸어 야 오늘 날궂이 하자 카이

송구허이 선약이 있네 카믄서

금요일에 하믄 어떻노 카기에

그라지 머 그카고 퇴근하는디 영 섭섭디다

 

오늘은 비도 다 그치삐고

 

어제 날궂이는 영 못 찾아 묵을 것이니

에이 참말로 아깝소  - 「날궂이」, -베트남 송신

 

  김상출은 대학 시절 시를 쓰기도 했지만 시인이 되기 위한 문학수업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힘겹게 살아오는 과정에서 그의 삶의 내면이 깊어지면서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잔에 물이 차면 저절로 흘러넘치는 이치일 것이다. 그 전환점이 <영주작가>와의 만남일 것이다. 그의 시에 새로운 문예사조나 새로운 표현기법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저간의 시적 이력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시를 위한 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쌓인 삶에 대한 성찰의 결과가 샘물이 흘러넘치듯이 시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 시집이 그의 첫 시집인 것도 그의 시가 삶에서 우러나온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가 체험에서 우러나온 시이기에 그의 시는 서사구조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이야기 혹은 서사를 좋아하는 정도는 서사를 만드는 이나 서사를 수용하는 이나 함께 매우 강렬하다. 자신만이 아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화자의 욕구나 서사구조의 다음 단계를 듣고 싶어 하는 수용자의 욕구는 등가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의 재료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 그런 측면에서 그가 선택한 시적 전략이 서사라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삶, 자신의 삶을 담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 서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게 된다. 김상출 시의 공감은 단순한 공감을 넘어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의 울림은 크고 여운은 길다. 그것은 김상출이라는 사람의 깊이와 관련된다.

 

아홉 살 어름

뒤꼍으로 난 턱 낮은 들창

그 문턱에 머리 얹고

거뭇거뭇한 천정의 골을 세어가며

가만히 배고픔을 삭이노라면

꿈결인 듯 나지막이 들리던 소리

 

 

동백꽃 통째로 떨어지는 소리

 

안 봐도 아는 소리  –「동백꽃」

 

  한국전쟁 이후 우리는 누구나 가난했다. 모두들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김 시인은 유독 가난했다고 한다. 그 가난의 서사가 많은 세월을 거치는 동안 시로 승화해서 깊은 울림으로 나타난다. 아홉 살 소년은 배가 고파 하릴없이 천정의 골만 세고 있는데 밖에서 무엇인가 툭 하는 소리가 들린다. 툭 소리는 먹을 것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기대의 의미와 먹을 수 없는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함의가 있다. 그 다음 소년은 안 봐도 그것이 먹을 수 없는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라고 이내 체념하고 만다. 배고픔의 한이다. 다른 민족에게 없고 우리민족에게만 있는 정서가 한의 정서다. 한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배고픔을 면해야겠다는 소망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좌절과 체념, 그 다음에 이어지는 원망과 미련이 어우러진 정서가 한이다. 이 시의 끝에는 배고픔의 한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닭실마을 종택 대청마루 너머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불빛 따라 슬며시 장지문 열고 들어가노라면,  삐 이 걱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 내 유년으로 이끄는 문 열리는 소리

 

  아버지 머슴 살던 그 큰 주인집 창호지 바른 격자문들 넓게 늘어서서 오금이 저리던 나에게 다가오던 불빛, 주인 영감 카랑카랑한 잔기침 위에 실려 오던 차고 싸하던 그 불빛

 

  막걸리 두어 잔에 얼근해진 아버지 흥얼거리시던 육자배기 가락이 슬슬 사위어 갈 때쯤이면 저만치 보이던 우리 육남매의 단칸방 쪽문, 구멍 숭숭한 댓살 사이로 희미하게 가난이 배어나오던 내 어린 날의 문      -「문」

 

  닭실마을은 그가 새롭게 정착한 소백산 밑 봉화에 자리한 안동 권 씨 권벌 선생의 후예가 모여 사는 한옥마을이다. 닭실마을을 방문했을 때 어린 시절을 회고한 시다. 이 시를 읽으면 미당의 어떤 구절과 연결된다. ‘나를 키어준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등의 구절이다. 이 시에서의 문은 아버지가 머슴 살던 주인집의 위엄 있던 격자문과 구멍 숭숭 댓살로 바른 화자의 집 문이 대조되고 있다. 가난이 배어나오던 화자의 문이 미학적으로 읽히는 것은 현재의 문이 아니라 많은 세월을 지난 기억 저편의 문이기 때문이리라.  

  김 시인은 마음을 열 수 있는 사석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의 이력을 스스럼없이 말하곤 한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일찍이 소년공이 되어 공장에서 일을 하며 가정의 생계를 도왔다. 고된 공장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누를 수 없어서 나중에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국어교사가 되었다. 또래친구들보다 배고픈 시절을 보냈기에 또래친구들이 공부할 때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남다른 이력을 가졌다. 그 이력이 그만의 개성을 형성하고 그만의 시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윽고 득의연한 웃음으로 아버지가 얻어 오신

털오라기 몇 떠다니는 멀건 돼지국물

호호 불어가며 사발 남짓 들이키고 나니

그제야 곁에서 흐뭇하고 애잔한 눈으로

내려다보시던 어머니가 보이드만

 

두어 시간 후부터 시작된 설사로

해거름까지 측간에 드나들기를 예닐곱 번

나는 그만 기진해버렸다

 

가물가물한 정신 줄 간신히 붙잡고 있는데

‘소복시키려다 애 잡을 뻔 했네 쯧쯧’

혀 차며 나가시는 아버지 헤진 고무신 뒤축으로  

떨어져 구르던 말이 들린 것도 같고

옷고름이 자꾸 눈께로 가는 어머니를

어렴풋이 본 듯도 하였다    -「부잣집 잔칫날」

 

  이 시의 소재는 돼지국밥이다.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 날 운동장 가마솥에서 끓던 기름 둥둥 뜨던 돼지국밥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돼지고기로 국을 끓인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먹거리 가운데 하나가 돼지국밥이다. 적은 양의 고기를 여럿이 고루 나누어 먹기 위해서 국을 끓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위의 시는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누구나 겪었던 이야기라서 가난한 시절을 공유한 사람은 금방 공감할 수 있다. 제삿날이나 명절이 아니면 고깃국도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 오랜만에 기름기 많은 고깃국물이라도 먹으면 설사가 나곤 했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일화를 오래된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어 독자로 하여금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고 있다. 당시에는 비극적 이야기지만 지금 해학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비극적 장면이 세월이라는 필터에 여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느니 참 슬픈 사람

단지 씨 성을 가진 것만으로

무신년에 옥좌에 올라

배운 것 없고 아는 게 없어

이리저리 휘둘리다

궁녀 후궁 치마폭에 감겨

세도정치배 꼭두각시 놀음에

나라 망하는 줄 모르다가

임술년에 졸하였다

 

생각느니 참 나쁜 사람

단지 가의 딸인 것만으로

임진년에 푸른 집에 들어가

아는 것 없고 고집만 세서

갈팡질팡 헤매다가

내시 무당 환술에 빠져

가 꼭두각시 되고

세월 가는 줄 모르는

를 범했음이

병신년에 밝혀지다 – 「병신년에 쓰는 시」

 

  앞에서 거론한 시들이 추억의 창고에서 꺼낸 재료들로 빚은 것이라면 위의 시는 현실을 비판하는 풍자시라 할 수 있겠다. 그의 현실인식은 전교조 활동을 통한 민주화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현대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세월이었다. 부도덕한 권력이란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 친일파를 기반으로 하는 이승만 독재, 4.19 혁명을 무력화 시키고 등장한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세력을 말한다. 이들이 우리 현사에서 주류(mainstream)를 형성하여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란 이들 부도덕한 주류와의 투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병신년에 쓰는 시」는 강화도에서 땔나무 하다가 이 씨라는 이유로 왕이 되어 세도정치에 휘둘리다가 요절한 철종임금에 박정희 거짓 신화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가 측근에 휘둘리다가 파면당한 박근혜를 오버랩 시킨 작품이다. 바보라는 고리로 시간을 거슬러 철종과 연결시킨 역사적 상상력의 거리가 시인의 공력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병신년이라는 십간십이지가 주는 어감과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통치자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풍자의 효과를 확장하고 있다.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상상력의 거리로 연결시킨 풍자의 수법이 시인의 공력이 간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김상출 시에서 풍자는 그가 오랜 세월 공부한 판소리 사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현실비판 시는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판소리의 어조를 통한 풍자와 해학으로 이루어진다.

 

 

자네 그거 아남?

매미가 여름 내내 죽자고 울어쌓는 곡절을

 

무슨 사연이 있다남?

 

, 것이 말이여

이늠이 얼매 못 사는디

그 안에 암놈을 불러서

거시기를 혀야 된께 그런다누만

 

짐짓

그려?

그러면 저놈은 거시기를 혔을까남?

 

아따 그래 가꼬 어치키 슨상질 헐까잉

혀부렀으면 목 따갑게 뭐 할라꼬 여태 지랄한당가

 

두 번 시 번 하면 더 좋잖혀

 

미쳤어?

삼복 염천에 더버 죽것는디

잠이나 퍼질러 잘 일이지  - 「짐짓」

 

  그의 판소리조의 특성이 잘 드러난 시다. 판소리 문학은 철저히 민중의 문학이다. 판소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해학이다. 우리 민중은 지배계층의 권력 아래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그 고달픔과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이 해학이다.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비극을 무화시키는 힘이 우리 판소리에 있다. 김상출 시인의 삶에도 녹녹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가 판소리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위의 시 ‘짐짓’에서는 판소리의 해학이 잘 드러난다.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장면 속에서 두 화자의 대화를 해학적으로 엮어 독자로 하여금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띠게 하는 시다.

  판소리는 남도에서 발생했기에 남도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어는 각 지역의 방언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우리 국어는 지금 방언이 상실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방언이 풍성하게 살아 있어야 국어의 토양이 비옥해 진다. 사라져 가는 방언을 보존하는 일은 국어를 풍요롭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의 판소리조의 시는 우리 문학의 특성인 풍자와 해학의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와 국어의 토양을 풍요롭게 한다는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여름을 바짝 달구는데

 

일곱 날이면 족했다

 

온몸으로

살아있음을 외쳤듯

 

죽을 때에도

삶이 통째로

빠져나갔다

 

턱없이 가벼운

이 주검에

늦여름이 슬프다  -「매미의 주검」

 

  젊은 시절 ‘하루살이’의 주검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본 기억이 있다. 창틀에 바짝 마른 몸을 누이고 죽은 하루살이의 주검에는 주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벼움만이 있었다. 하루살이의 주검은 왜 가벼운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졌다. 하루밖에 살지 못하니까 그 하루를 충만하게 살았을 것이다. 앉아서 쉴 사이도 없이 하루라는 생을 치열하게 살았기에 그의 생에는 음모라든가 비겁함이라든가 부도덕이 끼어 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모든 생이 끝나는 순간 수직어로 꽃잎처럼 떨어졌기 때문에 하루살이의 생은 완전하고 그 주검은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김 시인의 매미도 일곱 날 동안 여름을 바짝 달구다가 삶이 통째로 빠져나갔다. 치열했던 생이 빠져나간 주검의 가벼움이라는 발상에 심히 공감했다.

  비록 시의 재료는 곤충이지만 시인이 노래하고 싶은 주제는 인생이란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출간할 예정이라 한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생을 뒤돌아보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변곡점에 자리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내용에 따라 크게 나누면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시, 사소한 일들에서 얻은 깨달음의 시, 현실 비판의 시, 삶에 대한 성찰의 시로 거칠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매미는 삶에 대한 성찰의 시에 속할 것이다.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삶이 통째로 빠져나가는 것, 그런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나름의 인생관을 담고 있다.

 

늙은이는 왼쪽이 불편했다.

왼손이 위아래로 자꾸 떨리고

왼발은 딛는 둥 마는 둥

아들이 부축하여 온탕을 나선다

 

세면대 앞에 아비를 앉히고

익숙한 솜씨로 씻기는데

아귀가 딱 맞는 순서나 손놀림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나는 일 없이 시간을 재봤다

 

좋이 30여 분이 지났다

 

서너 차례 맑은 물로 행구더니

수건으로 물기 닦아 앉혀놓고는

부리나케 제 몸의 땀을 닦아내고는

늙은이를 부축하고 나간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탕 안이 갑자기

불효로 가득 차버렸다.  -「효자」3

 

  목욕탕에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정갈히 씻기고 나가는 효자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자기 몸 씻을 것도 잊고 효자의 모습을 관찰하는 화자의 심성이 시의 배경에 숨어 있다. 시인의 눈에 이 광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효심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효자 아들이 아니라 그 효자를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에 있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탕 안이 갑자기/ 불효로 가득 차버렸다.’니 시인의 마음에 얼마나 큰 효가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구절이다. 시인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요 시인이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문장이다. 김상출, 그는 시인으로 자처하고 살지 않았지만 이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시인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무작위로 고른 몇 편의 시를 통해 김상출 시인의 시의 일단을 감상해 보았다. 문학은 어차피 사람의 삶을 노래한다. 문학을 연에 비유한 비평가가 있다. 하늘의 연은 지상에 발을 디딘 연 날리는 사람과 연줄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연줄이 끊어지면 연이 추락하듯이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시는 공허한 언어의 유희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김상출의 시는 철저히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반영하고 있다. 시는 사람이다. 좋은 시는 사람과 시가 일치하는 시다. 김상출의 시는 공허한 시적 기교를 배제하고 그의 내면의 깊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의 깊이와 향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