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아홉 살 어름

뒤꼍으로 난 턱 낮은 들창

그 문턱에 머리 얹고

거뭇거뭇한 천정의 골을 세어가며

가만히 배고픔을 삭이노라면

꿈결인 듯 나지막이 들리던 소리

 

툭 툭

동백꽃 통째로 떨어지는 소리

 

안 봐도 아는 소리



 

 

 

  닭실마을 종택 대청마루 너머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불빛 따라 슬며시 장지문 열고 들어가노라면, 삐 이 걱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 내 유년으로 이끄는 문 열리는 소리

 

  아버지 머슴 살던 그 큰 주인집 창호지 바른 격자문들 넓게 늘어서서 오금이 저리던 나에게 다가오던 불빛, 주인 영감 카랑카랑한 잔기침 위에 실려 오던 차고 싸하던 그 불빛

 

  막걸리 두어 잔에 얼근해진 아버지 흥얼거리시던 육자배기 가락이 슬슬 사위어 갈 때쯤이면 저만치 보이던 우리 육남매의 단칸방 쪽문, 구멍 숭숭한 댓살 사이로 희미하게 가난이 배어나오던 내 어린 날의 문

 

 

   

생일 1                          

 

 

임진년 음력 팔월 스무이틀

식탁 위에 오른 생선 두 마리와 미역국

숟가락을 들다가 문득

오십 년 전 어머니를 뵈다

 

정갈하게 닦인 까만 개다리소반

그 밑에 잘 간추려 물 축인 볏짚 깔고

김 오르는 이밥 미역국 조기 한 마리

 

우리 집 가난으로는

당최 엄두가 안 나는 상차림 앞에

단정히 꿇어앉아 손바닥 부비며

무슨 말인지 가만가만 뇌시던

해마다 그리하시던 어머니

 

   

세수하다가

 

 

세수하다가

문득, 아니 오랜만에

거울 앞에서

멀거니

낯선 중년 한 사람과

마주하다

 

목덜미가

많이

늙었다

 

자세히 보니

스물 즈음에 먼저 가신

아버지가 보이고

작년에 보내드린

둘째 형님이기도 하다

 

멀거니

늙은 목만 더 쳐다보다

나오다

 

 

5

 

 

3백만이 넘게 산다는 부산

남구 용호동 후미진 어느 목욕탕

을미년 설날 새벽 여섯 시 어름

생면부지 사내 다섯이

두어 평 남짓한 욕조에 같이 들었다

 

그들에게 늘 데면데면한 세상처럼

서로를 쳐다보기가 좀 그랬다

 

침묵이 금처럼 깔리고

하나같이 천정만 올려보다가

하나 둘 빠져나갔다

 

참 표현하기 뭐한 5

 

 

  

가끔은 경건하게

 

 

새벽 네 시

오줌 마려워 잠깨다

오줌줄기로 왁자해진 변기

그 소리 잦아들자

머리 위에서 간신히 들리는

쪼르르 쫄 쪼르르

 

위층 노인네

소피보시나보다

 

어둑한 화장실 천정을 올려다보며

맥 빠진 오줌줄기로 새벽을 맞이하고 있을

이 땅의 그 모든

쪼르르 쫄 쪼르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진심으로 경건하게

 

  

철옥 씨 손

 

 

 

그이와 악수하고 있으면

이 사람 목젖이나 가슴 어디쯤

잘 간직해두었던 따순 눈물들

손금 따라 흘러나와 나까지 적시고

문득 눈길 들어 올려다보면

얼굴 가득 순한 웃음에

나는 고만 부끄러워지는데

내 손에 붙잡힌 여린 뼈마디들이

가만가만 속삭인다.

괜찮아요.

저도 부끄러운 게 많아요.

 

그이와 악수하고 나면

가만히 막걸리가 묵고 잡다.

 

  

효자손

 

 

중국 장쑤성 이싱현

대숲 우거진 마을에서

한겨울 잉어 잡아 봉양했다던

어느 효자의 팔뚝만 잘려

 

30호 크기 궁서체로

시퍼렇게 낙인찍힌 채

이 먼 땅까지 흘러와

 

경주문화엑스포 야시장 한구석

칠순 홀아비 괴춤에 꼬깃거리던

천 원짜리 한 장에 팔려

어둡고 군내 나는 쪽방 바람벽에

수인처럼 목이 걸리다.

 

 

술집 끝순네

 

 

천상병 그 양반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아, 좋은 술집이라며

날마다 찾았을 끝순네

 

마늘 까고 조선 쪽파 다듬으며

휘휘 쏟아내었을 그녀의 한숨들이

술방 구석구석에 나붓이 내리고

기웃거리던 햇살도

문턱 너머로 슬슬 자리를 잡는

오후 여섯시 어름

 

구풋한 뱃속에 막걸리 두어 잔이면

이태 전에 보낸 영감 생각에

짠한 그녀의 속내처럼

오장이 고만 알싸해지는데

 

맞은편 하망성당 꼭대기에 걸린

붉은 노을처럼

칠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얻은

그녀의 이름처럼

신산한 세월들이 간다

 

유행가 한 자락처럼

~~도 없이

 

  

 

청주집 변소

 

 

영주시 영주2337-6번지

깊고 좁은 골목 저 안짝에

옛날 주막 같은 술집 하나 있다네

청주집.

 

날마다 주물럭 고갈비 익어가고

술청 안팎이 모다 왁자한 그 집에는

여적 재래식 변소 하나 있는데

다시 말하건대 화장실 아닌 변소라네

 

한 자는 실히 되는 높지막한 시멘트 발판에 올라

두 다리 적당히 벌려 괴춤 풀고

호기롭게 오줌 줄기 갈기노라면

오줌줄기 따라 흘러가는 것이

버리고 싶은 그날 하루치의 삶인지

그럭저럭 이어가고 있는 인생인지

거기까지 알 필요야 없는 일이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퀴퀴한 오줌 냄새는

우리를 아스라이 저 먼 곳으로

틀림없이 데려다준다네

 

국민학교 시절 칸막이도 없던 변소

열댓 명이 늘어서도 충분하던 그곳

엉덩이 다 드러나게 바지춤 훌떡 까내려

고만고만한 고추들 꺼내놓고는

오줌줄기로 갈지 자 만들며 낄낄거리던

가난이고 기성회비고 죄다 잊은 채

맑고 푸진 웃음만 가득하던 그곳으로

어김없이 데려다준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