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 봄


  

   이병률



   나무 아래 칼을 묻어서

   동백나무는 저리도 불꽃을 동강동강 쳐내는구나


   겨울 내내 눈을 삼켜서

   벚나무는 저리도 종이눈을 뿌리는구나


   봄에는 전기가 흘러서

   고개만 들어도 화들화들 정신이 없구나


   내 무릎 속에는 의자가 들어 있어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앉지를 않는구나



   ***

   낯설다는 생각으로 집었던 시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낯익은 시들이 자꾸 눈에 띕니다. 이렇게나 자주, 이렇게나 많이 이 시인의 시들을 읽은 기억은 없는데 낯선 시간은 낯익은 시간으로 바뀌어갑니다. 그리고 문득 어느 순간 불이 환히 켜진 듯 한 장소가 떠오르면서 이 시집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가 언제였을까요. 언제였던지 시간은 정확하지 않은데 나는 이 시인의 이 시집을 조치원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 읽었다는 것을 기억해냅니다. 시간은 기록으로 남고 장소는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날들입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장소는 기억하는 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니 새삼 기록을 남기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는 날이기도 합니다. 봄입니다. 어떤 봄으로부터 이 봄은 '몇 번째 봄'인지 얼른 계산이 되지 않아 손가락을 내려다봅니다. 갈수록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일이 더 자주 생길 것입니다. 봄입니다. 이 봄은 어떤 봄으로부터 정말 '몇 번째 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