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세계는 체계의 식민지가 된다 (하버마스)


오늘밤은 106호에서 시작되었다
김행숙

못된 아이들은 이렇게 항상 머리 위에서 논다. 106호 고독한 남자는 갑자기 참을 수 없었다. 천장이 아니라 천둥 같잖아. 오늘밤은 조용해야 해.

오늘밤은 쉬어야 해. 106호 고독한 남자는 206호 고독한 여자가 된다. 우리 집엔 애들이 없어요. 그리고 난 쭉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306호는 살인사건 이후 칼 한 자루까지 사라졌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집이 됐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좀 더 올라가봐야 해요. 못된 아이들은 빠르게 기어올라요.

어디쯤에서 배꼽은 쑥 빠질까요? 옥상까지 올라온 우리들은 43명이다. 우리들은 일제히 하늘을 노려본다. 1206호 별빛같이 고독한 남자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기초수급자인 청년이 술에 취해 마을 회관에서 행패를 부리다 기물을 파손하게 되었단다.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고 그는 연행되어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단다. 그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그 청년에게 마을회관에 손해배상을 하게해야지 왜 국가가 벌금을 물리느냐고 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시간에 아주 적절한 질문이었다. 하버마스는 ‘우리의 생활세계가 체계에 의해 식민지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생활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아주머니들. 다정한 친구들 몇몇이 만난 술자리들. 완전히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입을 막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함께 어우러진다. 그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간다.

그 청년은 무슨 사연이 있어 마을회관의 기물을 파손하게 되었을 것이다. 술이 깨고 나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면 그도 순순히 따를 것이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가게 되면 마을은 점점 신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국가가 이런 소소한 일에 개입할까? 현대 사회는 국가 권력과 자본 권력이 깊이 결탁되어있다.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영리 추구, 효율성 등을 위해 국가 기구가 관료화되어있다.

자본은 개인이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치 않는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를 바란다. 서로 비교하고 질투하며 소비를 최고의 가치로 두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본이 원하는 세상이 이루어지니까. 국가 기구들은 이런 세상을 만들어간다.

기초수급자인 한 청년의 벌금형은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하는 거대한 사건’인 것이다.                  

생활세계와 체계가 하나인 공동체가 있었다. 대표적인 공동체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라고 정의했다. 즉 인간은 ‘폴리스적(Political)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 도시국가(Police)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이러한 공동체에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만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하나로 만들어갈 것이다. 그야말로 한 사람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눈부신 공동체를 아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1991년 봄 강경대 학생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희생되었다. 내가 속한 단체도 다른 여러 단체들과 함께 강경대 학생의 모교인 명지대에 모여 독재 타도를 외치며 도심으로 행진해갔다. 길 가던 시민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쳤다. 그날 밤 우리는 을지로에서 경찰을 몰아내고 ‘해방구’를 만들었다. 체계가 없는 생활세계. 가슴이 벅차올라 서로 어깨를 끼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둘러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사람이 이렇게 고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 바람, 건물들, 지나가는 차들이 다 고귀해졌다.

나는 이렇게 기적적으로 마르크스가 꿈 꾼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를 만났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믿는다. 아무리 체계가 우리의 아름다운 생활세계를 마구 짓이겨버려도 생활세계는 언제고 되살아나리라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황량한 생활세계 속에 산다.

김행숙 시인은 폐허가 된 생활세계를 처절하게 노래한다. ‘오늘밤은 106호에서 시작되었다’  

‘못된 아이들은 이렇게 항상 머리 위에서 논다. 106호 고독한 남자는 갑자기 참을 수 없었다. 천장이 아니라 천둥 같잖아. 오늘밤은 조용해야 해.//오늘밤은 쉬어야 해. 106호 고독한 남자는 206호 고독한 여자가 된다. 우리 집엔 애들이 없어요. 그리고 난 쭉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306호는 살인사건 이후 칼 한 자루까지 사라졌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집이 됐잖아요.//그러니 우리는 좀 더 올라가봐야 해요. 못된 아이들은 빠르게 기어올라요.//어디쯤에서 배꼽은 쑥 빠질까요? 옥상까지 올라온 우리들은 43명이다. 우리들은 일제히 하늘을 노려본다. 1206호 별빛같이 고독한 남자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빌라로 이사 온지 두 달이 다 되어 가건만 옆집 노부부밖에 모른다. 가끔 소음으로 이웃들의 존재를 느낄 뿐이다. 적막하다. 우리는 어찌하다 서로 애타게 찾으면서도 이다지도 모질게 서로를 외면하며 살아가게 되었을까?

강의 후 뒤풀이하며 잠시 동안 더불어 사는 인간을 느낀다. 사람의 진한 향기를 맡다 술집 문을 나서면 이 세상은 황량하다. 무표정한 건물과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를 달리다보면 내 표정도 차츰 굳어진다. 핵전쟁 후의 세상처럼 괴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