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길 약력: 1958년 전북 김제 출생. 1984년 <두레시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북국독립서신>. 현 계간 ,창작21> 주간. 한국작가회의 회원. 창작21작가회 대표. 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    
 

┃책머릿글┃

  첫 시집 이후 18년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다. 남다른 감회를 갖는다. 또한 올해로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이번 시집을 선보이기 위해 나름대로 분투적 노력을 다했다. 내 시가 있게 한 몇몇 뜨거운 사랑들이 곁을 지켜주기도 하고, 희망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한없이 감사를 드린다.
  사실 현대시가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의심해 왔다. 따라서 이에 대해 필자도 상당한 고뇌의 시간과 함께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나름대로 민족문학의 새로운 전망과 문학적 통합성을 숙제로 안고 좀더 노력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끝으로, 이 시집이 나오는데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드린다.    

2019년 5월
문 창 길 


┃북돋우는 글┃

굳세고 굳센 살과 피와 뼈로

김 준 태┃시인·전 광주대, 조선대 초빙교수 

  문창길 시인의 시(노래)를 읽으면… 저 식민의 세월 속에서도 끝끝내 뿌리 뽑히지 않고 맥박을 치며 살아온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사람들과… 지금껏 우리들 몸속으로까지 불어 닥친 모질고 모진 검붉은 바람을 뚫으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이 땅 한반도의 질기고 질긴 쑥풀과 엉겅퀴꽃들이 궁극으로 ‘향기’를 잃지 않고 굳세고 굳센 살과 피와 뼈로 일어서왔음을 가슴 벅차게 감지하게 한다.

  시집 제목부터가 [북국독립서신]이라! “하늘도 무심하게 푸른 계절 / 동갑내기 가시내들이 보는 앞에서 / 옥선이년 아니 도미코년 아카다년으로 / 검정치마 하얀저고리 벗겨진 채 / 사쿠도 안쓴 인간도 아닌 흉악한 일본군들에게 / 옥색같은 알몸을 뺐기고 또” 빼앗겼던… ‘일본군 위안부’로 내몰려 끌려갔던 일제강점기 시절의 저 수많은 이옥선할머니, 김순덕할머니, 문옥주할머니, 황금주할머니들이… 반쪽해방 1945년 이후, 분단 70년을 넘어서 오늘은 ‘녹두알처럼 단단한’ 한 노래꾼 시인의 쇠나팔 꽹과리 시(서사)를 통해 우리들의 몸뚱이에 칭칭 휘감기면서 철삿줄처럼 아프게 읽힌다.
  바로 그런 역사적 각성과 정서적 깨달음을 통하여 ‘촛불을 들고’ 통일의 그날을 당차게 노래하는 문창길 시인은 이제 “남자는 떠난 여자와 / 여자는 떠나지 않은 남자와 / 세월이 함께 흐르는 곳에서 / 물 같은 또는 피 / 피 같은 또는 물 // 통일역으로 가는 몇 량의 객차에 / 그만큼의 밀어를 실어 보낸다 // 우우 바람 속에 서서 // 여자의 가슴 밖으로 그려지는 / 북국의 그림 한 점”(남남북녀)을 비롯하여 건강하고 억센 서사(이야기들)를 여기 심약한 시단에 무릇 “봄들판”처럼 펼쳐놓는다.■ 

 

┃북돋우는 글┃

진정성 있는 문학사적 가치를 지향

박 남 희┃시인

  문창길 시인의 두 번 째 시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로 쓰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가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는 주제나 대상은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 금정굴 학살 사건, 외국인노동자, 분단과 통일, 광화문 촛불, 고 노무현 대통령, 노숙자, 원양어선 어부, 에어컨 수리기사, 태백광부 등 다양하다.
  그의 시는 우리의 뇌리에서 이미 잊혀졌거나 쉽게 잊혀질 근현대사의 주제들을 시인의 서사적 의지로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우리 문학사적으로 보면 이 시집은 1920~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했던 임화를 필두로 한 카프문학과 해방공간 문학, 1960~70년대를 지나 80년대의 민중시에 이르기까지 면면이 이어오던 리얼리즘 문학이 크게 약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그 맥을 이어주고 있는 중요한 시집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가 낳은 늦둥이 아들을 소재로 한 「어린화가 겨레군」 같은 시를 보면 시인의 이러한 시정신은 어린 아들에게까지 전승될 정도로 절실함과 치열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의 시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 이러한 시정신은 그의 시가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학적 기교를 훌쩍 뛰어넘어 진정성 있는 문학사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북돋우는 글┃

민초와 더불어 사는 민중시인

이 재 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창길 시인이 보내준 작품 몇 편을 읽자마자 먼저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 원망스럽다. 왜 이런 시를 나에게 보내 괴롭게 만드는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터라 우리나라의 모진 역사를 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뼈저린 아픔을 잘 안다. 한국전쟁 중 고양 금정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도 조금 안다. 광주학살과 세월호 참사, 이주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 등은 아직도 여전히 신문에 오르내린다.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한 사연들을 책이나 신문에서 읽을 때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운 조선 누이”들의 검정치마와 무명저고리가 벗겨지는 처절한 사연이나, 고양과 광주에서 어린 소녀들이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참혹한 모습 등을 시를 통해 접하게 되니 왠지 모르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맛보게 된다.
 둘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1998년 10월 첫 방북 길에 황해북도 사리원의 한 육아원 (고아원)에 들렀을 때다. 그 무렵 신문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해골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적잖게 본 터였다. 카메라를 꺼내들고도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생김새와 달리 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러면서 사진기자들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시인들도 사진기자들 못지않게 잔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영혼 없는 서정시인이 아니라 민초와 더불어 사는 민중시인이라면.■


┃작품해설┃

조선 누이를 위한 씻김굿, 그리고
이 땅의 대의 - 문창길 시집 『북국독립서신』을 읽고

임 금 복┃문학평론가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와 빨갱이라는 이름의 빨간 수사법은 20세기와 21세기 근현대사, 두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지만 아직도 미완의 과제이다. 즉 이 두 코드는 아직도 일제 강점 한국과 분단 한국의 현실이란 그 시대와 이 시대가 복합되어 함장되어 있는 한국의 미완의 현실이자 역사적 유산이다. 문창길 2시집 『북국독립서신』에는 이 두 코드를 포함해서 동학횃불, 척왜척사의 운동, 3·1 만세, 그리고 중일 전쟁 이후인 1937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일제 강점기 말기의 식민지 현실인 1940년 어느 날, 1942년 7월, 해방 이후 분단, 한국전쟁, 좌우익 이념 논쟁인 빨갱이, 치안대, 태극단, 보도연맹, 빨간 완장, 그리고 4·19혁명, 5·18광주학살, 6·10민주항쟁, 6·15공동선언, 10·4선언, 416광장, 병신년 촛불혁명 등이 시어로 나오고 있어,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를 포함한 120여 년의 시간이 공존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집에서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고도로 압축 성장되어가는 과정 중 누적된 모순의 사회 폭발 및 청산, 그리고 국제화 시대의 삶까지 이어져 오는 작금의 현실까지 아우르고 있다.

 특히 문창길 시인은 통시적 시간의 역사태와 그 시간들 속에 실존한 희생양들과 아픔의 소유자들에 남달리 시선을 주목하고 있다. 즉 시인은 파란한 만장의 역사 속에 일 개인이나 집단의 삶 속에 폭력을 당하고 희생양들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은 망각되어 지워져 버렸고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 재평가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 역사와 민족을 위한, 시대와 사회를 위한, 그리고 희생자를 위한 대의는 무엇일까? 이런 흑암의 역사의 축을 통찰해내고 관통해내 적어도 그들의 영혼과 넋을 문창길 시인은 무당이 되어 불러내어 제대로 자리매김하려고 했다. 그것이 시인의 몫이 아닐까? 희생자들의 역사적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인은 한 축에 실제했던 어두운 과거사, 피폐한 모순의 역사, 핏물진 역사 등을 통찰해 내고 있다. 반면에 다른 한 축으로 시인이 선 자리에서 시인이 꿈꾸는 역사관은 광명의 역사, 새로운 빛의 역사, 꺼지지 않는 촛불의 역사, 푸르고 청청한 높은 빛의 역사로 지향하고 있다. 즉,망각의 장에 덮어버리고 싶은 마비되고 박제된 의식이 아닌 어둠의 역사 속에 송두리째 희생양이 되어 사라져버린 몸과 넋을 시인은 무당처럼 불러내 그들을 위해 살풀이와 씻김굿으로 해원하고 있다.
- 이하 생략


대표시


북국독립서신


블라디보스톡의 밤은 유난히 차고 어둡다
이따금 석탄차들이 탄가루를 흩날리며
인민들의 희미한 삶을 덧칠하기도 한다
그 검은 안개 사이로 가로등 몇 개 움츠린다
구멍 숭숭한 담장 안에선
무언의 대화가 녹슨 영혼의 창틀을 흔든다
털모자를 깊숙이 끌어내린 채
북국의 어느 고샅을 지난다
아니 조선땅 충청골 살미진 유년의 고샅을
꿈처럼 운명처럼 척왜척사를 외치며
척박한 걸음을 옮긴다
게걸스러운 로스케의 취기에 찬 그림자가
전선의 팽팽한 혈맥을 더듬는다

내 슬픈 식민의 동포여
무명의 흰 옷자락을 흔들어라
척왜의 바람이 북국에서도 일었느니
한번쯤 아니 몇겁으로 스친 백의의 인연들
힘 좋은 조선사내의 무등에
희망찬 아이들을 솟게하라
저 순결한 앙가슴을 움켜쥐고
하냥없이 기다리다 흰 살결을 꼬집는
우리의 아낙들을 위하여
북국의 쨍쨍거리는 얼음강처럼
깨어 일어나라 
이제야 다가올 독립조국의 아침을
우리 눈빛으로 숭고히 지켜야 하리니


고 김순덕할머니의 난중일기·1
-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지리산 산청에서 태어난 순덕이
가난한 농삿꾼 넷째딸년으로
송이버섯을 따고 담배잎을 엮으며
순박쟁이 덕스러운 열두살 가시내로 컸다
어느날 담배잎 줄에 엮다 시름겨워
마른 연기 한모금 내뿜던 아버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모진 매질을 당했다 
우리가 키운 담배잎이 우리 것이 아닌
왜놈 것이라고, 몰래 빼돌려 피운 죄라고 했다
살집이 터져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그 풍진 세상 토끼새끼 다섯자식과
청상 마누라쟁이 놔두고 떠났다
그것이 참으로 가벼운 아버지의 역사였다

식민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여름철 푸른 콩잎 따 말려
겨울 끼니로 삶아 먹었다 나무뿌리도, 시래기도
조선민의 양식은 그것이었다
물죽이고, 풀죽이고 닥치는대로
먹고 살다 어느덧 열일곱 가슴 봉긋한
무명저고리 검정치마 조선처녀 다 되었다

1937년 음력 정월 보름날이었다
일본에 취직시켜 돈 벌게 해 주겠다고
간살스런 조선남자 하나 처녀 공출하러
동네 고샅 뒤지며 돌아 다녔다
이 철딱서니 없던 순덕이년
돈 벌게 해 준다는 그 헛셈에 속아 그냥 따라 나섰다
몇 명의 또래 가시내들과 함께 정암마을 다리를 건너며
울고 또 울었다
큰 돈 벌어 오겠다고 서로를 부둥키며 울었다
그 것이 지 운명의 슬픈 서막인 줄도 모르고
철컹거리는 완행열차에 올라 부산 부두로 갔다
저 넓고도 깊은 바다 건너엔
청청 푸른 내 꿈을 이루어줄 세상이 있을거라고
순덕이년 나카사키행 연락선에 올랐다
처지가 비슷한 조선여자들 선창에 올라
하얀 손수건을 흔들고 흔들었다
어떤 이는 나보다 어린 동생뻘이었다
어떤 이는 돈 벌겠다는 욕심으로
젖먹이를 뿌리치고 달려 나왔단다
우리는 서로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언니, 동생으로 말없이 흔들리는 파도를 따라
낯선 이국의 땅에 발을 디뎠다
바람도 눈빛도 차가운 나가사키항
부두가 여관에 우리는 노예처럼 부려졌다
아니 일본군 보초병 총구 앞에 철저히 감금 되었다
나는 물었다
“왜 우리를 여기에 가두나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요?”


고 김순덕할머니의 난중일기·2
- 검정치마 무명저고리 벗겨지던 날


왜국의 첫날밤 무언가 이상한 바람이 흘렀다
아니 무서운 명령이 금방이라도 왜군놈의 입에서
터져 나올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계급이 높은 군인에게
순덕이년 끌려나갔다 억센 팔걸이에 꼼짝 못하고
검정치마 무명저고리 벗겨져 나갔다
그리고 아 나는 이 순덕이년은
조선처녀의 순결한 알몸을 밟히고 또 밟히었다

아 그 날
그 날부터 이 순덕이년 조선 딸년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조선아낙으로 살 수 없었다
아 어머니 아버지 이제 이 년은 누구의 딸년으로
살아가야 되나이까
채송화보다 아름다운 백옥보다 하얀
낭랑 십칠세 조선가시내 순덕이년
긴 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왜군놈의 그것이
가랑이를 찌를때마다 더 쓰라린 이름
일본군정신대로 또는 위안부로 불려 나갔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아니 이름이었다
 
또래 가시내들과 우리는 매일 밤 군대 막사 안에서
조선 진달래 붉게 지는 줄도 모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혼이 내려다 보는 줄도 모르고
거친 숨 몰아쉬며 꽃사슴같은 슬픈 짐승으로
홍익의 어진 조국을 위해 백의의 어진 백성을 위해
승냥이 왜군들을 상대하고 싸워야 했다
우리의 꿈은 이렇게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참으로 무지렁한 조선가시내들이었다
 


고 김순덕할머니의 난중일기·3
- 산청 평촌리 생각


내 고향 산청 평촌리가 생각났다
보리쌀 묽은 죽 쑤어 먹어도
내 핏줄 내 살붙이 함께 부대끼며 살던
순정한 시절이 엊그제인데 할일없이 생각난다
내 나이 열두살적 친구 가시내가 소개해준
은행원집 식모살이는 지금보다 나았다
하루 종일 남의 디딜방아를 찧어주고
딩기를 얻어다 시래기 섞어 끓여먹던
궁휼한 시절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았다

나는 물었다
아니 왜군놈에게 따져 물었다
뭐 이제 살맛 죽을 맛 가릴 것도 없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이에요?”
“권총 찬 저 승냥이 군인들과 자는 일이에요?”
고향 떠나 나가사키로 온지 일주일
순덕이년 세상 다 산것 같았다
조선서 살아온 날 보다 긴 역사였다
그러나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왜놈보다 더 치떨리는 조선인 인솔자를 따라
또래 처녀들과 함께 산만한 배를 타고 상해로 실려갔다
아 정말 목숨이 길어 슬픈 짐승으로 빠져 들어갔다
차라리 저 푸르고 깊은 바다 속으로
검정치마 뒤집어 쓰고 심청이처럼
몸을 던질까도 생각해 보았다 역시
내 목숨은 목숨이 아니었다 내 몸은 몸이 아니었다
저 조선인 감시자의 눈초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생각나고, 형제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지돌이할머니를 추모하며


할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푹 눌러 쓴 검정 털모자 속에서
할머니의 어두운 과거사가 삐죽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 언저리에 2월의 늦은 눈발이 설설 내리고
동구밖 어귀엔 혹시나 동생이 들어서지 않을까
내내 귀 쫑긋 올리며 눈시울을 적신다
그보다 더 낭랑 십팔세 꽃다운 나이에 순정을 바친
우리 서방님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
늘상 그리움에 주름진 얼굴 감추던 할머니
소시적 꿈 많은 청춘을 살라먹고 아니
왜놈들에게 빼앗긴 무명치마 흰저고리의
어머니같은 혼을 이제야 맘 놓고 훠이훠이 휘날리는
할머니 그렇게 지고지순한 할머니가
이제 날개를 펴고 살아남은 자가 그리워할
먼 머언 나라로 가시는군요
그곳에는 참기름같은 사랑이 있나요
그 먼 나라에는 헤어지지 못할
서방님 하나 기다리고 있나요
그래요 가시려거든 내 짝사랑 같은 마음도
아니 우리의 아리랑 같은 어깨춤도
그 가슴에 맘껏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이옥선할머니의 자분자분한 귓속말도
김군자할머니의 그렁그렁한 타박거림도
박옥련할머니의 맛깔나는 춤맵씨도
배춘희할머니의 섹시한 그림솜씨도
문필기할머니의 조용조용한 말동무도
강일출할머니의 애교스런 질투도
김순옥할머니의 알 듯 모를 듯 노랫말도
박옥선할머니의 잔병치레로 힘든 발걸음도
와락 껴안고 웃음바람으로 하늘바람으로
가시어요 그것이 내 어머니 같은 지돌이할머니의
희망이라면 또는 왕생하는 극락이라면
그곳이 경상도 경주군 안강면 양월 창마을 고향이라면
소작농 딸년으로 태어나 지지리도 못나게시리
단단한 삶을 살아낸 우리의 지돌이할머니라면
가시는 걸음걸음 붉은 꽃 진달래 즈려밟고 가시어요
저 눈망울 맑은 퇴촌유치원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짓을 따라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옵나니
마냥 푸르러 곱디고운 십칠세 처녀로만
그곳에서 사시어요 다시는
지긋해서 생각도 싫은 안강보통학교에서
조선말보다 일본말을 더 배우지도 말고
꽃사슴 같은 슬픈 짐승으로 콩밭 매고 밀을 심어
가을 추수때면 지주에게 다 바치고 남은 쭉정이
걷어다 무솥에 푹푹 삶아 식솔 배 채우지 말고
꿈 많은 가시내 어느덧 앞가슴 봉긋한
열일곱 지돌이 처녀로만 영원하시어요
가끔은 이 어리석은 시인도 잊지 마시고
자나깨나 걱정 많던 안 사무국장도 잊지 마시고
불심으로 원력을 펼치시는 원장스님도 잊지 마시고
목소리도 청청하게 시를 읽던 이기형시인도
꼭 기억 하시고 검정치마 흰저고리 살랑이며
고구려적 그 기상으로 가시다가
고이 머무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보세요
우리는 기어이 왜놈을 물리치고
우리의 자주 독립을 이룰겁니다


비정규직 김용균 아우여


김용균 아니 다시 불러도 희망어린
만국의 노동자 김용균 아우여
그대가 컨베이어로 나르는 석탄으로
저 거대한 자본의 체온을 덮히는 동안
그대의 지친 몸은
자꾸만 검은 늪으로 빠져드는 것을
하늘을 우러러 참 부끄러운 나는 몰랐네
모른 것이 아니라 검은 눈을 뜨지 못했네
나는 내가 아닌 듯
망국의 문장 노동자도 되지 못했네
그렇게 시 나부랭이나 끄적대는
시인이 무슨 대수이겠나
그러나 아우여 김용균이여
만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여
나는 반성하네
불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 눈으로 내가 보지 못하는
내 가슴으로 나를 뜨겁게 달구지 못하는
이 땅의 나들과 함께
용균이 자네의 아직도 뜨겁게 살아있는
가열찬 심장을 멈추지 않게 하겠네  



문창길 시집 /북국독립서신/164면/값8,000원


문창길 시인 사진









■ 이 시집은 3·1 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민간공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경기문화재단으로 부터 문예진흥지원금을 보조 받아 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