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개성화에 대한 삶의 과제가 있다 (융)


개망초
오선홍

깎아지른 벼랑
돌 틈을 비집고
저도 위험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홀로 피었다
당당하게 사라지는
개망초.


아주 오래 전에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말했다. ‘사회 운동하는 사람은 도덕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때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도덕성’ ‘옳기에 가는 길’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봐도 대의명분이 뚜렷한 이런 것들은 마음 깊은 곳에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겉으로 도덕성을 내세울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두운 자신의 모습이 쌓이게 된다.

지킬박사가 되면 동시에 하이드도 되는 것이다. 지킬박사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이드가 틔어 나올 때 지킬박사는 한순간에 하이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배신한 운동가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운동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같은 ‘당당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선홍 시인은 ‘개망초’에게서 당당함을 본다.

‘깎아지른 벼랑/돌 틈을 비집고/저도 위험한/하나의 풍경이 된다.//홀로 피었다/
당당하게 사라지는/개망초.’

개망초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개망초다. 그는 다른 어떤 식물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으로만 살아간다. 그에게서는 여기서 나오는 당당함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당당함이 있다. 하지만 인간 세계에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14살 소년의 당당한 삶이 있다. 허클베리 핀은 야생의 소년이다. 부모도 없이 혼자 살아간다. 학교도 가지 않고 교회도 가지 않는다. 누더기를 걸치고 짐승처럼 살아간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영락없는 불량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모험을 하면서 ‘인간성(人間性)’이 깨어난다. 인간에게는 인간에게만 있는 본성이 있다. 사랑이다. 다른 존재에 대한 공감, 연민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이런 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허클베리 핀은 노예 소년 짐과 모험을 하면서 흑인에 대한 공감, 연민을 배우게 된다. ‘사랑’은 본성이기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다보면 자연스레 깨어난다. 하지만 학교에 가고 교회에 가는 다른 아이들도 이런 능력이 쉽게 깨어날까? ‘도덕성’을 배우는 순간 오히려 이 능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허클베리 핀은 모험을 끝내고 나서도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려 한다. 우리 안에는 ‘허클베리 핀’이 있다. 우리 안의 아이가 깨어나야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안에서 우리나오는 대로 사는 게 왜 이리도 힘들었던가?’

개망초는 자신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한평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꽃을 피웠다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는 길에는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인간 세계에 맞춰 살아가는 것. 또 하나는 자신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아가는 것.

자신 안의 ‘아이’를 깨우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때 우리는 남을 사랑할 수 있고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