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일제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머리를 스님처럼 깎고 그 위에 동그란 모자를 썼다. 그리고 겨울이면 천주교 사제복과 비슷한 까만 교복을 입었다. 그것이 일제의 잔재라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우리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이라는 세월을 일본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식민지로 살았다. 해방이 되고 일본은 물러갔지만 아직 이 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본의 흔적이 남아 있다. 35년의 세월 동안 일본 천황의 신민이 되어 살았으니 그 잔재가 없을 수 없다.

 

  외래문물이 들어오면 언어도 함께 들어온다. 한반도에 왜구가 들어오면서부터 일본어도 함께 들어왔다. 더구나 그들은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학교에서 한국어 쓰는 것을 금했으니 일본어가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음에도 무심코 쓰는 말 가운데도 일본어가 많다. ‘이빠이’, ‘야마’ 등 우리 주변에는 무심코 쓰이는 일본어 흔적의 말이 많다.

 

  생활 속에 스며있는 일본어를 모두 없앨 수는 없다. 일본어 어휘를 쓰는 사람을 나무라자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일본어라는 것을 알고 쓰면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일본은 우리의 이웃나라이기에 다른 나라보다 많은 문화 교류가 있고 말도 따라 들어오기 마련이다. 대학에 일본어 학과가 있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다. 이웃나라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스며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본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잔재다. 우리의 생활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제 잔재가 너무나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교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학생들의 머리를 스님처럼 깎게 하고 군복 같은 교복을 입힌 것도 모든 국민을 군대로 규정한 일본군국주의 문화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마음대로 체벌을 한 것도 훈도가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왔던 일제의 잔재다.

 

  학교마다 교표가 있는데 대개의 교표는 비슷하다. 일본 경시청 상징을 본뜬 것이다. 아침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애국조회’를 하고 교장선생님이 ‘훈화’라는 것을 하는 것도 일제의 잔재다. 지금도 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황국신민의 서사’에서 온 것이요, 국민교육헌장‘은 일본 천황이 내린 ’교육칙어‘에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학교마다 전교생이 모일 수 있는 운동장이 있다. 그게 당연한 걸로 알았는데 유럽의 학교는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학교의 운동장은 전교생을 모아놓고 훈화하도록 설계된 일본제국주의의 흔적이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 교사가 수업에 들어가면 반장이 일어나서 차렷! 경례!를 했는데 그 역시 일본군국주의 문화다. 현충일마다 찾아가 행사를 하는 충혼탑이 전국 각지에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탑이다. 이 충혼탑의 모양이 일본 충혼탑의 양식과 거의 같다. 이 밖에도 일제의 잔재는 우리 문화의 각 분야에 두루 남아 있다.

 

   그것이 일제의 잔재라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을 우리의 전통인 양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5년이 되었음에도 우리가 모르는 일제의 잔재는 차고 넘친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사회를 움직인 주류가 친일파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