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의 세계


   김승희



   선(線) 하나를 잘못 그어 독을 만들었다

   독 안에 든 쥐들이 독 안에 바글바글하다

   독 안의 쥐는 독 안의 쥐들밖에 모른다

   독 안에 든 쥐는 독 안에 든 쥐에 잠식당한다

   독 안의 쥐는 독서를 모른다

   독 안의 쥐는 국정 교과서만 배우면 된다

   독 안에 든  쥐는 미래를 모른다

   독 안에도 바벨탑이 있다

   독 안에 든 쥐는 거짓말같이

   바벨탑 아래서 독 안에 든 쥐를 사랑하기도 한다

   독 안의 쥐는 독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독 안의 쥐는 독 안이 유일한 세계여서

   다른 가능한 세계를 모른다

   독 안의 쥐는 또 독 안의 쥐와 피 터지게 싸운다

   바벨탑 아래서 독 안의 쥐는 독 안의 쥐들밖에 적도 없다

   먹는 쥐와 먹히는 쥐, 무서운 쥐와 무서워하는 쥐, 세계는

   그렇게 무식할 정도로 간명하다

   얼굴의 살이 떨어져나가고 뼈가 보이고

   벌거숭이들은 아예 살 전체가 떨어져나갔다

   진로도 없고 퇴로도 없이

   독 안에 든 쥐는 독 안에 든 쥐처럼 살다가

   죽어서도 독 속에 묻힌다

   독 안에 든 바벨탑 아래 묻힌다

   피 묻은 깨소금 같은 별들이 독 뚜껑 아래 반짝인다



   ***

   '독 안에 든 쥐'가 너무 많아 '독 안에 든 쥐' '독 안에 든 쥐' 하고 따라가다가 문득  시의 첫 문을 연 저 '선'이 무얼까가 새삼 궁금해졌는데, 저 '선'은 혹 피리부는 사내가 불던 피리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