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눈으로

 

 

 

그대의 눈으로 보리라

떠돌이의

떠돌이 아들은

 

연인들 이민족(異民族) 반인반수 미치광이들의 노래가 대양과 사막을 건너 울려온다

 

신이 흡족해하는 노래가 아니라

인간들이 열광하는 노래를 불러라

 

끝내 읽을 수 없는 바람의 표식들 무지한 나의 생을 어루만져주며

 

진정 나는 모든 것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니

한순간에 냉랭해진 여인에게서 더욱 벗어날 수 없었듯이

 

저토록 맹랑하고 무자비하며 사랑스럽게

어느 재주꾼 놈이 순결하고 높은 한 여인의 손목을 잡아끄는 것을.

 

  

 

시왕의 잠

 

우리가 그에게 바친 찬사는 단 몇 줄도 되지 않는다

수많은 시인의 등장과 더불어

쏟아졌던 현란한 수사에 비하면,

그는 마치 저쪽 누군가가 불러준 것처럼 제 울림의

반향도 모르고 우리들 곁에서 떠난다

백성이 없는 왕이여

위대함이란 안락에 빠진 우리를 불러내어

두려움을 갖도록 만들며

신이 아니라 그가

신의 옷을 훔친 자임을 뒤늦게 알게 되더라도

우리의 찬미는 그의 귀에 닿지 않을 것이다

정원의 시큼한 열매가 맛이 들어

그가 응시하는 대로

허망하게 밤의 공간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긴 탄식 속에 바라본다

나 자신을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시를 안타까워하며

 

여인의 슬픔이 아름다운 육체에 있다면

왕의 슬픔은 죽음에 있으니

고독은 검은 항아리처럼 익고

그는 진정 왕이 되어 우리를 구속한다

이제 우리는 겨우 배타적인 것들의 등가성을 눈치채고

어둠과 빛, 세라핌과 사탄의 노래를 구별하지 못할 때

악이여 너는 이 땅에서 뜻을 이루었으니

그만 쉬어라 하고 농담을 던질 수 있다

영원한 창공의 평화로운 아이러니가

꽃과 같이 속절없이 아름다우며*

그가 살았던 시대의 울타리마저 그의 영속성 위에

형체를 잃어버렸다

램프 아래서 작은 나무 책상 하나가 꿈을 꾸듯

그의 영예는 고귀하며

마침내 불구덩이에 던져져 활활 타오르리라

밤에로의 귀환

 

이제 그에겐 인간 자체가 지닌 그 어떤 모순도 없다

한 종족도 거느리지 않았으므로 누가

시왕의 영원한 잠을 깨우겠는가

우리는 그가 만든 정연한 세계에서 마음을 놓을 뿐

여기 췌사를 올린다

아아 장미나무 관을 쓴 긍지의 종지기여!

 

 

 

*말라르메, <창천 (蒼天)>에서

 

  

이승호

2003<창작21>등단. 시집 <행복에게 바친 숱한 거짓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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