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이 정지되고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기약 없이 미루러지고 있다. 그로 인해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꽃구경도 할 수 없다. 옛말에도 있듯이 봄이 뫄도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해결책이 쏟아지지만 어디에도 이렇다 할 묘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류에게 얘기치 못한 전염병은 있어 왔다. 12세기에는 나병이 있었고 14세기에는 유럽 인구의 절반을 앗아간 흑사병이 있었다. 흑사병을 피하기 위해 귀족 젊은이들이 한적한 별장에 모여서 병이 물러갈 때를 기다리며 매일 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이야기를 모은 책이 ‘데카메론’이라는 고전문학으로 남아 있다. 20세기에는 스페인 독감, 21세기에는 사스, 메르스 등의 전염병이 있었다. 앞으로도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바이러스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이를 극복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인류의 태도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분열이 아닌 협력이다. 나라와 나라, 개인과 개인이 분열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일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CNN과의 대담에서 인류가 분열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 하고 인류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인류에 닥친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은 미리 예견할 수 없는 일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거나 개인의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재앙은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나라와 나라 간에 극복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해야만 전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도 마찬가지다. 남을 탓하고 서로를 비난한다면 공멸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나라가 망하고 우리나라만 망하지 않는 것,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 병이 들면 나도 병이 들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둘째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재앙이 닥치면 재앙으로 죽는 사람보다 재앙에 대한 염려로 죽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가게에 손님이 끊어지고 당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사원들의 봉급은 주어야 하는데 생산 활동이 없으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걱정하다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염려가 깊고 절망하기 쉽다. 절망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근심이,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라면 염려는,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이다. 염려는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을 앞당겨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염려는 무용하다. 어떤 지혜로운 이가 말한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소개한다. “염려하려면 두 가지만 염려하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염려하지 마라. 아프면 두 가지만 염려하라. 고칠 병인가, 못 고칠 병인가? 고칠 병이면 염려하지 마라. 못 고칠 병이면 두 가지만 염려하라.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이면 염려하지 마라. 죽을병이면 두 가지만 염려하라. 천국에 갈 것인가, 지옥에 갈 것인가? 천국에 갈 것 같으면 염려하지 마라. 지옥에 간다면? 지옥에 갈 놈이 무슨 염려? 그냥 벌 받고 반성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