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일 보리

 


 

늙어 젊은 당신은 씽씽씽 자전거를 달리다가

! 자전거를 길바닥에 던지고 오늘

5월의 보리밭에 누웠다.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젊어 늙은 당신의 입버릇마저 버리고 오늘

보리밭의 풍경으로 납작 엎드렸다.

 

평생 어려 젊은 나는 애써 넘을 고개가 없었고

오늘의 소화성 장애는

내일의 오늘에도 안 사라졌다.

 

푸른 보리 이랑은 문득 오늘 황금 파도로 일렁였고

당신의 입버릇에 무심한 나는

결코 당신의 나이에 이르지를 않았다.

 

당신이 누운 저 오늘의 보리밭 풍경에는

당신의 내일이 없고 나의 겨울이 없고

나의 오늘이 없고 내가 없다.

 

오늘 떠오른 보리밭의 태양이

철모르게 뜨거웠어도

나는 오늘 다시고 삼킬 입 다 다시고 삼켰다.

 

 

 

 

빛의 문

 

매일매일이 먼 여행길이다.

깊은 먼지가 길을 늘린다.

 

문을 열고 마스크를 벗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색을 얻었다.

 

원한 건 당신이었으나

당신은 번번이 무리들을 대동했다.

 

가족이라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의 꼬리표들

 

필요한 건 당신이라는 온전한 친구 하나

꼬리를 못 떼면 당신도 버려야지.

 

문 안에 문이 있다.

칼라를 들어낸 담백한 빛의 문

 

꺾이지 않은 빛이 환하다.

문을 닫고 재빨리 문 안의 문을 열어젖힌다

 

환한 빛 속에 몸을 보이는 건

자작나무 비자나무 소나무 대나무…… 숲

 

곧은 나무는 곧아서 좋고

숲은 어우러져 생명을 이루지.

 

지금은 잠시 색을 버리는 시간

빛의 문 안의 숲을 산책할 시간

 

숨은 길고 발걸음은 가볍지.

긴 숨 속에 길이 발랄하다.

 

* 그림에 시, 김완‘Lightscape

 

 

 

 

남 태 식/2003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내 슬픈 전설의 그 뱀』『망상가들의 마을』『상처를 만지다』, 리토피아문학상(2012) 김구용시문학상(2016)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