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후로


   이지아



   쇠꼬챙이가 한쪽 귀에 들어가 다른 한쪽 귀로 나오면 튼튼하고 바삭한 꼬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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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무수하다. 그 무수한 '오늘' 중에 하필 '오늘'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후로' 어떤 무시무시한 '쇠꼬챙이'라도 '한쪽 귀에 들어'갔다가 '다른 한쪽 귀로 '나오'기만 한다면 '튼튼하고 바삭한 꼬치가' 되는가. '쇠꼬챙이가' '꼬치가' 되기는커녕 내 심장은 흐물흐물 녹아내려 '귀'와 '귀'를 잇는 길마저 다 녹여 '쇠꼬챙이'도 '꼬치'도 애초 없는 것이 될 것 같은데, 그럼 하필 깨달은 '오늘'은 '오늘'이 아니되고. 깨달음은 무위가 되는가. '한 사람을 아끼는 일은 외래어 하나를 배우는 일'(이지아 시 '기회 없이'에서)이라는데, 애꿎은 투명성 놀이가 또 순수한 시 읽기를 이렇게 구렁텅이로 몰고가고,  나는 또 구차해지고, 구차해져서 상상력이 답답하고 좀스러워진다. 애초에 내 상상력이 가 닿은 곳이 이런 곳이 아니었지...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