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경주남산

 

-정일근

 

 

 

  그리운 그 노래 나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아주 아주아주 오랜 옛날 황룡사 탑 그늘에 기대어 서서 당신은 그 노래 들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나는 아직 그 노래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탑도 사라지고 절과 사직도 사라져 고즈넉한 가을 절터와 당간지주만 남아 쓸쓸한데 나의 눈과 귀는 돌 속에 묻혀서도 여전히 천 년 신라쪽으로 속절없이 열려 있습니다

  언제쯤 노래를 들려주시렵니까 그 언제쯤 서라벌 쪽에서 부는 바람 편에 당신의 안부와 주소가 적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보내 주시렵니까 그 편지 받을 수 있다면 비파암 진신석가께서 낮잠에 들면 바위 위에 벗어 둔 가사를 훔쳐 입고 어느 하루 당신을 만나러 저잣거리로 내려가고 싶습니다 내려가 그리운 당신 노래 한 소절만 들을 수 있다면 다시 돌 속에 잠겨 흘러 갈 오랜 잠이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 노래 허리에 감고 또 한 천 년 무작정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일근 시집『경주 남산』(문학동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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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우리나라의 보물산입니다. 산 전체가 문화유적의 천연 야외 박물관입니다. 유네스코에서도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해놓았습니다. 경주 남산을 제재로 한 현대시만 해도 여러 수백 편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정일근 시인만큼 경주 남산을 많이 노래한 시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시집 한 권이 아예『경주 남산』입니다. 시인은 노래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노래는 대부분 환희의 찬가(讃歌)가 보다는 눈물의 비가(悲歌)가 많습니다. 시인은 어쩌면 이 비가를 한 평생 불러야 하는 운명의 천형(天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경주에 가고 싶거나 경주 남산을 오르고 싶은 밤이면 나는 정일근 시인의『경주 남산』펼쳐듭니다. “그리운 그 노래”로 시작되고 있는 정일근의「노래」는 신라 천년의 유적과 역사가 한 축이 되고, 그리운 당신이 한 축이 되어 씌어진 애절하고도 가슴 저린 슬픈 연가(戀歌)입니다. 시인이여, 단언컨대 그 “그리운 당신 노래”를 결코 듣지 못할 것입니다. 끝도 없이 그 “그리운 노래”를 찾아 시인은 길 찾아 나서고 노래를 불러야하겠지요. 독자인 우리는 시인이 부르는 이 슬픈 노래를 들으며 다만 고개 들어 먼 데를 바라볼 뿐입니다. 아, 사람이 가고 세월이 가도 노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의 아름답고 슬픈 노래는 불멸(不滅)입니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