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서정주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

솔나무 나막신에 紅唐木 조끼 입고

생겨나서 처음으로 歲拜 가는 길이였다.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

萬歲 부르다가 채찍으로 얻어맞고

학교에서 쫓겨나서 帽子 벗어 팽개치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

風月 팔아 술 마시고

좁쌀도 쌀도 없는 주린 아내 곁으로

黃土재의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였다.

 

시방도 나는 눈을 보고 있다.

거느린 것은 한 떼의 바람과

形體도 없는 몇 사람의 亡靈 뿐,

이제는 갈 데도 올 데도 없는

미련한 미련한 韻律의 實務曺長이여.

 

눈을 보러 눈을 보러 온 것이다. 나는

해마다 내려서는 내 앞에 쌓이는

하이얀 하이얀 눈을 보려고

까닭없는 이 땅을 다니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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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미당이 일군 운율은 가히 마약과도 같다. 읽고 또 읽어도 그 律은 죽지를 않고 오히려 맘 속에 녹아서 노래로 부활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7.5조 가락이 숨어 한몫 하는 것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미당의 시적 감각과 시적 상상이 그 중요한 힘일 것이다.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라고 시간대별로 반복되는 이 시는 미당의 생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 같기도 하다. 온 천지가 순백의 환한 세상을 만드는 눈을 보고 경이에 찼으나 이내 녹고마는 허무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까닭없는 이 땅을 다니러 온 것이다."라고 귀결되는 슬픔을 읽게되는 것이다.(임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