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서정주

 

 

 

 

사자(獅子)가 업고 있는 방(房)에서

공부하던 소년(少年)들은

연(蓮)꽃이 이고 있는 방(房)으로

일학년(一學年)씩 진급(進級)하고,

 

불쌍한 아이야. / 불쌍한 아이야.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야.

너는 세상에서도 제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

 

돌을 울리는 물아. / 물을 울리는 돌아.

너희들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만(萬) 사랑의 심청(沈淸)이를 가진

뭇 심(沈) 봉사들도

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텔레비여. / 텔레비여.

도설천(兜率天) 너머

무운천(無雲天)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너머

아미타불토(阿彌陀佛土)의 사진들을 비치어 오라, 오늘은…….

 

삼천년전(三千年前)

자는 영원(永遠)을 불러 잠을 깨우고,

 

거기 두루 전화(電話)를 가설(架設)하고

우리 우주(宇宙)에 비로소

작고 큰 온갖 통로(通路)를 마련하신

석가모니(釋迦牟尼) 생일(生日)날에 앉아 계시나니.

 

 

*1968년 5월.

-『미당서정주시전집1』(민음사,1991)

 

 

 

 

 

우리나라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이다. 그가 일제강점기 서울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하고 방황할 때 중앙불교전문학교 제자로 받아준 이가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법명 정호) 대종사이다. 청년 미당이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었던 박한영 스님을 만난 것, 또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것은 그의 시 세계와 사상의 진경(眞境)을 펼쳐나가는 원뿌리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 51세 되던 해인 1968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쓴 작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으로 인해서 “공부하던 소년들은” “獅子가 업고 있는 에서” “蓮꽃이 이고 있는 房으로/一學年씩 進級하고”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는 “세상에서도 제일로/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로 미당은 적고 있다. 그리고 또 이어진다. 이 세상의 사물인 ‘돌’과 ‘물’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뭇 沈 봉사들도/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층 더 맑고 선한 삶이 비롯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인해서.

 

위 시에서 미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시적 전언(傳言)의 핵심은 “자는 永遠을 불러 잠을 깨우고” “兜率天 너머/無雲天 非想非非想天 너머”에서 우리네 삶까지 “두루 電話를 架設하고” “작고 큰 온갖 通路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의 부처님 지혜로 밝혀놓은 이 ‘통로’는 바로 인연(因緣)과 인과(因果)의 법칙일 게다.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인연의 지엄함과 소중함을 깨닫고 절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함이다. 절하고 기도하는 삶은 결국 자기 참회를 통한 자기 변화일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생명의 거름을 주는 삶의 실천이 중요함을 깨닫는 하루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현담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