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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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22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임술랑
2213 2012-10-03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감상) 저는, 그 사람도 아니 되고, 그 사람을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쓸쓸하게도.... (임술랑)  
221 초승달을 보며/임영석
임술랑
2417 2012-09-08
초승달을 보며/임영석 괄호도 아니고 반 괄호로 달이 떠서 어떤 말의 의미들을 풀어줘야 할 것인데 앞 문장 깊은 여백에 품은 글이 사라졌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죽었다는 아버지는 콩깍지 속 콩들처럼 칠남매를 남겼지만 어머닌 육십 평생을 반 괄호로 살았다. 괄호( )로 묶어내도 쭉정이가 많을 건데 어떻게 칠남매를 혼자서 키웠는지 반 괄호 달빛을 보니 그 의문이 풀린다. 둥그런 달빛 속을 파고 든 저 그림자 제 몸을 다 내주고 그림자로 채운 마음 서로가 품고 품어서 반 괄호가 되어 있다. 불혹의 내 나이도 반 괄호가 되었지만 자식의 숨소리에 쫑긋 세운 내 두 귀는 언제나 초승달처럼 앞 괄호를 열어둔다. 시집『초승달을 보며』2012 동방 ................................................................................................................................................. (감상) 초승달[)]로 괄호를 열고, 그믐달[( ]로 괄호를 닫을 때까지, 아비 없는 자식 일곱을 키우신 거룩한 어머니의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반 괄호이므로 혼자서 괄호를 열고[ )], 닫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시 열려있는 "콩깍지 속 콩들처럼 칠남매"는 추웠으리라. 이 인고의 세월을 초저녁 하늘과 새벽녘 하늘은 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임술랑)  
220 달장/권자미
임술랑
2520 2012-08-26
달장/권자미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 할머니가 말하신다 손 없는 날 메주 씻어 너는 정월 열닷새 한결같던 날이었는데 금 가다니 금 간 항아리 닦으시는 할머니 상처 없이 모진 날 어찌 견디나 버리지 못하고 눈물자리 막아 우리고 소금단지로 써야겠다 하더니 달장 담가 놓으셨네 둥실 뜨는 누런 달(月) 한 장! 뚜껑 닫아둘까 보다 시집『지독한 초록』 2012 애지 ............................................................................................................................................................................................................................ (감상) "달장"의 뜻은 "날짜로 거의 한 달 기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달장"은 시인이 만든 조어로 "달장(月醬)"인 것이다. 할머니의 눈물이나 금 간 항아리에서 나타나는 세월에 "누런 달(月) 한 장"을 장(醬)으로 담그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 장의 메주덩어리와 달 月자는 이미지상 닮아있다. 눈물같은 세월, 금이 간 항아리에 누런 달 하나를 띄워두고 " 뚜껑 닫아둘까 보다" 하고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항아리 속에서 한 달 두 달 세월(月)은 익어가는 것이다. (임술랑)  
219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김재순
3873 2012-08-23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풀벌레 소리를 따라 그대 이제 떠나가려네 그대의 변심을 저녁에 느끼고 아침에 느끼고 한낮에도 뜨거운 척 한다는 걸 알 수 있네 그대에게 받은 붉은 장미다발 그늘에 말려 나 아직은 그 꽃을 창가에 걸어두려네 --김재순--  
218 제천역에서/송경동
임술랑
2290 2012-08-13
제천역에서/송경동 봄기운이 좋아 산빛이 보고 싶어 무작정 떠났다 돌아오는 길 제천역 매표소 허리 꾸부정하니 앞에 선 할머니의 말씀이 아득하다 한 명이세요 아니라 내가 아니고 저기 우리 언니라 돌아보니 더 작고 볼품없는 할머니 한 분이 보퉁이 하나 안고 민들레처럼 쪼그려 앉아 있다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한 명이라는 거죠 아니라니께 저기 우리 언니로 끊어주랑께 이제 가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길 이게 삶이라는 아픈 생각 나는 누구의 배웅을 받으며 이 생의 마지막 열차를 타게 될까 청량리역에서 노량진까지 가는 전철표도 끊어달라는 할머니 여기선 끊어주지 않는다니 만 원짜리 한 장을 꼭 쥐어주며 이걸로 꼭 전철표도 끊어 가라는 할머니 저세상으로 가면 이승의 인연 모두 흩어지고 말 터인데 꼭 우리 언니여야 한다는 할머니 꼭 너여야 한다고 발버둥치던 나의 사랑도 저만치 기찻길 옆으로 멀어져 간다 《작가들》2012여름호 ................................................................................................................................................................................................................................................. (감상) 사랑은 이처럼 깊은 것이다. 질긴 것이다. 애절한 것이다. 아프고 아픈 것이다. 잊히지 않는 것이다. 그립고 그리워 한 세상을 쓸쓸하게 살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승의 터미널에는 늘 기다림이 있는 것이다. "꼭 너여야 한다고 / 발버둥치던 나의 사랑"이 사람을 돌게 하는 것이다. (임술랑)  
217 버스 잠깐 신호등에 걸리다 / 이면우
김재순
3756 2012-07-30
버스 잠깐 신호등에 걸리다 큼직한 손바닥에 상추 펼치고 깻잎 겹쳐 그 위에 잘 익은 살코기 얹고 마늘 된장 쌈 싸 한입 가득 우물대는 사내 보는 일 그것 참 흐뭇하오 맑은 술 한잔 약봉지 털 듯 톡 털어넣고 마주 앉은 이에게 잔 건네며 껄껄대는 사내 보는 일 역시 흐뭇하오 그 곁에 젊은 여자, 호 불어 넣어준 제 아이 오물대는 입을 그윽한 눈빛으로 지켜 보고 있었소. 유리벽 이쪽에서 나도 저리 해보리라 마음먹은 저녁은 신호등 떨어진 네거리처럼 무수히 흘러갔소. 여름이면 낮이나 밤이나 물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한 때가 이면우 시인에게는 신호등 떨어진 네거리처럼 무수히 흘러가서 아주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면우 시인은 나이도 많이 들었고 아이들도 다 자라 여유를 찾았겠지요 (아, 여유를 찾으니 청춘이 없나요) 2연에서 눈물이 왁 솟구치니 저도 이제 인생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요 -- 김재순--  
216 첫사랑/고증식
임술랑
2153 2012-07-17
첫사랑/고증식 너무 멀리 와버린 일이 한두 가지랴만 십오 년 넘게 살던 삼문동 주공아파트가 그렇다네 열서너 평 임대에 우리 네 식구 오글거리던, 화장실 문 앞에 세 끼 밥상 차려지고 어쩌다 쟁그랑쟁그랑 싸워도 자고 일어나면 바로 코앞에서 얼굴 맞대던, 이젠 쉬 돌아갈 수도 없는 거기, 마음의 집 시집『하루만 더』2010 애지 ................................................................................................................................................................................................................................ (감상) 중국 고전 詩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큰 수레 몰고 가지마라. 먼지만 덮어 쓰리라."(無將大車 祗自塵兮). 작은 수레보다 큰 수레를 운용하자면 그만큼 힘들고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겠다. 이처럼 인간이 그 어떤 外物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근심과 걱정도 소유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함으로 비쳐볼 때 고증식의 시 "첫사랑"은 얼마나 알뜰한가. 가진 것이 없음으로 근심 걱정 또한 없어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걸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이 조그마한 것처럼 작은 것은 늘 아름답고 편하고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립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인 것이다.(임술랑)  
215 멍멍멍멍멍/권현수
임술랑
2234 2012-07-02
멍멍멍멍멍 권현수 길 없는 길을 따라 문 없는 문을 지나 망월사 설법전에 오른다 이뭣고! 춘성스님 주장자 높이 들어 법상을 내려치시니 "멍멍멍멍멍" 댓돌 아래 놀란 강아지 소리 묻지 않는 질문이고 대답 없는 대답이다 만 가지 생각으로 어지러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죽비소리다 "멍멍멍멍멍" 도봉산에서 멍멍經 소리를 듣는다. 《불교문예》 2012 여름호 ..................................................................................................................................................................................................................................... (감상) 무지막지한 죽비는 개소리를 부를뿐이다. "멍멍멍멍멍" 뭐뭐뭐뭐뭐라고 하는 것 같다. 스님께서 지팡이로 법상을 내려치시며 사람을 깨우치게 하신 것이지만 댓돌 아래 웅크리고 있던 개는 놀랄뿐이었다. 사람의 법과 짐승의 법은 같을 수가 없다. 사람들의 일로 하여 자연 좀 놀라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임술랑)  
214 까따리나는 없다 / 박진성
김재순
2656 2012-06-25
까따리나는 없다 / 박진성 까따리나는 없다 러시아 갔다 우리는 비 오는 날 술집 구석에서 레닌 흉상을 가지고 놀거나 바카 디 알코올에 기대어 백만 송이 장미를 틔워 올리는 장난을 했다 女 , 23세, 모스크바 출생, 가족 부양의 異國 여자는 만료된 비자 갱신하 러 러시아 갔다 이번에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까따리나는 긴 주소를 적어주었다 레닌 이즈 마이 히어로; 내 서투른 영어가 그녀의 조국을 흔들 때마다 까따리나는 어머니 선물로 시계가 필요하다며 브 래지어끈을 풀곤 했다 그녀는 확실히 유물론자였다 내가 한 번은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를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책 구석구석을 살피는 그녀는 한국어판 레닌의 저서가 다다른 도시의 피로를 어루만진다 레미 마르땡과 보드카와 로얄 살루트 사이 에서 출렁이는 그녀의 한국 밤, 어메리카, 어메리카를 연발하는 스물 세 살 러시아 여자에게서 나는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까따리나는 없다 러시아 갔다 가난한 까따리나의 의자에 앉아 보드카를 마시는 밤 , 클럽 러시아 지붕으로 슬라브,슬라브 백동전처럼 빗방울은 부서지는데, 새로 온 나타샤가 레닌의 흉상을 잡아 채 가는 거였다 그토록 아름다운 사상을 지닌 레닌의 나라도 자본에 휩쓸리는 가난한 젊은 여자를 구출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에게도, 옛날로부터 지금까지 까따리나는 있지요.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이 까따리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요 까따리나가 러시아로 갔어도 그녀의 넋에서 벗어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난해합니다, 초인이 오기 전까지는... 김재순  
213 꿩국 / 장현우
윤임수
3188 2012-06-20
꿩국 들쥐 떼가 고추밭 파헤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 라며 쥐덫을 놓았는데 쥐 대신 눈 먼 꿩이 잡혔다 과수 원 형님네 어르신들 신명이 났다 무 썰어 넣고 매운 고 추 풀어 얼얼한 꿩국보다 직접 담가 맛이 쩍쩍 앵기는 복분자술보다 탁탁 소리 내며 동짓죽이 끓고 있는 가마 솥보다 이 산동네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다는 허리 휜 어 르신들 찰진 말씀이 긴긴 밤 더 구수하다 * 장현우 시인은 농경사회의 따뜻한 공동체를 찾아서 잘 나가던 도시의 직장을 그만 두고 귀농했다. 그의 첫번째 시집 "귀농일기"는 귀농 이후 함께 지낸 사람들과 자연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런 생활에서 건져올린 시들이기에 한결같이 쉽고 편하다. 그러나 그 쉽고 편함 속에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 또한 한겨울 농촌 마을의 일순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꿩 한 마리를 모두가 나누어 먹는 공동체적인 소박한 삶과 밤새 이어지는 '허리 휜 어르신들 찰진 말씀'이 있다. 모두 모여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모두는 어르신들의 구수한 말씀을 따라 밝은 내일로 간다. 단순하면서도 정이 있고 많지 않으면서도 나눔이 있는 이런 모습에서 어르신들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모여 함께 밤을 새우는 다정함이 있으니 말이다. 그 푸근한 정경에 내 마음도 살며시 끼워넣고 싶다.  
212 題烏江亭 / 杜牧
임술랑
2371 2012-06-16
題烏江亭(제오강정) 杜牧(두목) 勝敗兵家事不期 ( 승패병가사불기 ) 包羞忍恥是男兒 ( 포수인치시남아 ) 江東子第多豪傑 ( 강동자제다호걸 ) 捲土重來未可知 ( 권토중래미가지 ) 병가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는 것 수치를 참는 것도 남아의 일이다 강동에 자제들 중에는 호걸이 많았으니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어찌 될지 몰랐으리 ................................................................................................................................................................... (감상) 劉邦은 項羽와의 싸움에서 72번을 패배했다고 한다. 맨날 쫓겨 다니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던 마지막에 항우를 쓰러트렸다. 항우는 그 굴욕을 참지 못한 것이다. 烏江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할 것을 권유 받았으나 듣지 않았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검에 엎드리어 자결했다. 천년 뒤에 역사의 현장을 지나던 시인은 그 자결을 아쉬워 한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모를 참는 것이 인생이다. 안 되면 다시 그래도 안 되면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언제나 늦은 때는 없는 것이다. (임술랑)  
211 詩 / 권덕하
윤임수
3271 2012-06-11
詩 휘파람 불듯 비눗방울 날리듯 입에서 새끼들 풀어 놓는 물고기 있다 찰나에 어미 입으로 숨어드는 목숨들 있다 물풀로 금줄 치고 부화 기다리다 주리고 주려서 뼈가 되고 살이 붙는 말 머금어 기를 수 있는 것이 자식들만 아니구나 곡절에 피어난 가슴을 치는 노랫말도 난생卵生이구나 눈감고 부르는 청 좋은 노래, 구전口傳하는 생명이여 *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권덕하 시인은 "주리고 주려서 뼈가 되고 살이 붙는 말"이고 "머금어 기를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곡절에 피어나 가슴을 치는 노랫말"이자 "눈감고 부르는 청 좋은 노래"라고도 합니다. 알로 태어나는 우리 시들이 생명의 날개를 달고 오래오래 구전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리고 머금어서 가슴을 치도록 해야겠지요?  
210 부처님 오신 날/서정주
임술랑
2514 2012-06-07
부처님 오신 날 -서정주 사자(獅子)가 업고 있는 방(房)에서 공부하던 소년(少年)들은 연(蓮)꽃이 이고 있는 방(房)으로 일학년(一學年)씩 진급(進級)하고, 불쌍한 아이야. / 불쌍한 아이야.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야. 너는 세상에서도 제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 돌을 울리는 물아. / 물을 울리는 돌아. 너희들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만(萬) 사랑의 심청(沈淸)이를 가진 뭇 심(沈) 봉사들도 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텔레비여. / 텔레비여. 도설천(兜率天) 너머 무운천(無雲天)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너머 아미타불토(阿彌陀佛土)의 사진들을 비치어 오라, 오늘은……. 삼천년전(三千年前) 자는 영원(永遠)을 불러 잠을 깨우고, 거기 두루 전화(電話)를 가설(架設)하고 우리 우주(宇宙)에 비로소 작고 큰 온갖 통로(通路)를 마련하신 석가모니(釋迦牟尼) 생일(生日)날에 앉아 계시나니. *1968년 5월. -『미당서정주시전집1』(민음사,1991) 우리나라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이다. 그가 일제강점기 서울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하고 방황할 때 중앙불교전문학교 제자로 받아준 이가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법명 정호) 대종사이다. 청년 미당이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었던 박한영 스님을 만난 것, 또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것은 그의 시 세계와 사상의 진경(眞境)을 펼쳐나가는 원뿌리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 51세 되던 해인 1968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쓴 작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으로 인해서 “공부하던 소년들은” “獅子가 업고 있는 房에서” “蓮꽃이 이고 있는 房으로/一學年씩 進級하고”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는 “세상에서도 제일로/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로 미당은 적고 있다. 그리고 또 이어진다. 이 세상의 사물인 ‘돌’과 ‘물’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뭇 沈 봉사들도/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층 더 맑고 선한 삶이 비롯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인해서. 위 시에서 미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시적 전언(傳言)의 핵심은 “자는 永遠을 불러 잠을 깨우고” “兜率天 너머/無雲天 非想非非想天 너머”에서 우리네 삶까지 “두루 電話를 架設하고” “작고 큰 온갖 通路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의 부처님 지혜로 밝혀놓은 이 ‘통로’는 바로 인연(因緣)과 인과(因果)의 법칙일 게다.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인연의 지엄함과 소중함을 깨닫고 절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함이다. 절하고 기도하는 삶은 결국 자기 참회를 통한 자기 변화일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생명의 거름을 주는 삶의 실천이 중요함을 깨닫는 하루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현담 이종암(시인)  
209 접견하다 / 김은령
윤임수
2310 2012-05-29
접견하다 서울 사는 오 모 시인이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해서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안부를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다 아내와 함께 도봉산 산행길에 들렀던 관음암에서 찍었다는 사진 한 장도 따라왔다 현판도 주련도 보이지 않는 당우 햇살이 사선으로 비켜 가는 섬돌 위에 나란히 계신 흰 고무신 한 켤레 닳고, 닳아서 찢어진 뒤꿈치를 이제는 사라진 일거리인, 이불 호청 꿰맬 때나 쓰는 굵은 흰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 나도 모르게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했다 * 두 손 정갈히 모으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인은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에서 부처님을 만나고 자신을 들여다 본다. 아주 작은 것에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시인이 나는 참 좋다. 지난 3월에 배달되어 온 시집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요즘에야 보고 있는데 불기 2556년 석가탄신일인 어제 이 시가 내게 딱 걸렸다. 부처님의 자비인 듯 고맙다. 이제 절집에 가면 혹시 꿰맨 고무신이 있는지 둘러보게 될 듯하다.  
208 봄/김재순 [1]
임술랑
2265 2012-05-21
봄 김재순 햇볕을 짙게 바른 담벼락 앞에 젊은 홍매 한 그루 수천의 잔가지를 성냥개비처럼 들고 있다 담벽에 가지 하나 확 그으면 화락 화락花樂 화락化樂 그대의 중년도 타오를 것이다 ..................................................................................................................................................... (감상) 망설임없이 곧 바로 불 붙는 사랑. 이유도 없고 因果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쓸쓸하고 누추한 세상에서 성냥불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화락 순식간에 불붙어 모두를 따뜻하게 하는 소중한 사랑인걸요. 아~ 님에 손길을 느끼면 나도 화락 타오를거예요.(임술랑)  
207 돌아가는 이유 / 이승진
임술랑
2169 2012-05-15
돌아가는 이유 이승진 남의 머리 물그릇으로 사용했던 그 분은 주인에게 얼마나 미안 했겠어? 돌아갈 수밖에는...... 게딱지에 밥 비벼먹다가 문득 그 분 생각하노니 남의 머리 밥그릇으로 사용한 나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미안해야 하는지 돌아서서 훌쩍이는 한 여인을 보았네. 돌아서서 훌쩍이는 바다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네 《건달바》2012 ................................................................................................................................................................ (감상) 남을 아프게 하고서는 자기가 즐거울 수 없다. 남을 밟고는 오롯이 설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은 共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元曉스님이 물그릇으로 알았던 쓸쓸한 해골 바가지, 이승진 시인이 밥그릇으로 사용한 게딱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짓밟지 않는가. 그러므로 시인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미안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 "돌아서서 훌쩍이는 바다"에서 우리가 "돌아가는 이유"를 묻는다.(임술랑)  
206 강을 따라 / 이달
김재순
2525 2012-05-02
강을 따라 / 손곡 이달 강변 십리길을 굽이굽이 돌아 꽃잎 속을 뚫고 가니 말발굽도 향기롭다 산천을 부질없이 오간다는 말 마소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하다오 해석 / 문태준 원문 江行 / 李達 路繞江干十里長 落花穿破馬蹄香 湖山莫道空往來 贏得新詩滿錦襄 다른 해석) 강변 십리길을 굽이굽이 돌아 수북수북 쌓인 꽃잎 말발굽도 향기로워라 산천을 부질없이 헤맨다 마오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한 것을 길은 강줄기를 십리나 길게 돌아 떨어진 꽃잎은 말발굽에 밟혀도 향기롭다 호수여 산이여 공연히 왕래한다 말하지 말라 새로지은 시가 비단 주머니에 가득하다네 피는 꽃잎 지는 꽃잎 온갖 꽃이 수북한 강변의 좁은 길을 말을 타고 지나가니 말발굽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꽃이 지고, 잎이 지고 머리카락 희어지고 홍안에 주름지고 그래서 인생은 허무한가요. 부질없나요 아니, 아니라고 합니다 마음에 시를 가득 넣어주니까요 무언가 깨닫고 성숙하게 하니까요 -김재순-  
205 달빛과 동침하다/박해자
임술랑
2455 2012-04-20
달빛과 동침하다 박해자 잠이 오지 않아 문을 여는 순간 45도 직사각으로 비스듬히 누운 그 반갑게 맞아주며 훤하게 누워 있다 한눈에 반해 덥석 품에 든다 환한 팔로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그 당신이 나를 찾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내가 환해지는 밤이다 [2011낙동강] ............................................................................................................................................................. (감상) 대저 物이란 그것도 거친 바탕질 따위 상대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인간은 거의 괘념치 않는 것이다. 그것은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여유분의 맘이 부족함 때문도 있어리라.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러한 염려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 틈으로 들어 온 달빛과의 교감을 통해 物에 대한 낯선 인식을 깨고 있는 것이다 .(임술랑)  
204 꽃 피는 철공소 / 백상웅
김재순
3080 2012-04-16
꽃 피는 철공소 / 백상웅 철공소 입구 자목련은 과연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망치질 소리가 앞마당에 울려퍼지면요 목련나무 우듬지에 남은 살얼음에 쨍 하고 금이 가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은 강철을 얇게 펴서 봄볕에 달구죠 한잎 한잎, 끝을 얌전하게 오므려 묶어서 한송이 두송이, 용접봉 푸른 불꽃으로 가지에 붙여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의 팔뚝에도 꽃이 벙글거려요 팔목에 힘을 줄 때마다 자목련꽃이 팽팽하게 열리죠 자색화상 위에 푸른 실핏줄이 돋아나요 그걸 보고 여자들이 봄날처럼 떠나기만 했대요 용접봉을 손아귀에 쥔 내 친구 스물일곱살 오늘은 철공소 마당에서 철목련을 매달아요 가지마다 목련꽃이 벌어져서 햇볕을 뿜어대죠 꽃 핀 철문은 허공에 경첩을 달고 식어가고 있고요 밤에는 하늘에다 꽃잎을 붙이느라 잠도 못 자요 20대는 어쩌면,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보다 이성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할 수도 있지요 여자들이 떠나고, 폼나는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낮에는 마당에 있는 나무에 꽃을 매달고, 밤에는 하늘에 꽃을 붙이느라 잠도 못자는 것은 친구, 용접공인 자신을 이토록 아름답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은 많은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 하나,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한 사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 한 사람을 더듬어 봅니다 --김재순--  
203 에밀레, 에밀레/서지월
임술랑
3768 2012-03-30
에밀레, 에밀레 서지월 서라벌 깊은 밤에 솥뚜껑이 우는구나 에밀레 -, 에밀레 - 어미의 간장 녹아서 발목 없는 귀신 천 리를 가듯 하늘엔 달이야 하나인데 부뚜막 위의 솥뚜껑, 부엌문 열고 나와서 눈물 흘리는 달빛 사이로 찢어진 천 갈래 만 갈래의 풀벌레 울음소리 찌르르 찌르르 문살을 훑고 누가 이 밤중 홀로 깨어 길을 가는가 부엌 아궁이 재도 사그라진 밤 솥뚜껑 저만이 허기진 배 움켜쥐고서 에밀레 -, 에밀레 - 토함산 그늘 아래 누가 만파식적 불어제껴 동해의 차운 물 덥혀 끌어올 수 있을까 어미는 절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밤 형체 없는 아기가 부뚜막 위에 걸터앉아 솥뚜껑 잡고 우는구나 애끓는 쇳물 속으로 들어간 아기가 오늘 밤은 어미 없는 부엌에 찾아와 밥 달라고 울어쌓는구나 [유심] 2012년 3/4월호 .................................................................................................................................................................................................................................................... (감상) 수시로 행주로 훔치고 닦았던 어머니의 솥, 솥뚜껑. 그 무쇠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던 어릴 때의 부엌. 밥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기를 어머니는 솥을 닦으며 빌었을 것이다. 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그 무쇳덩이가 내는 에밀레 소리. 서지월의 상상이 구수한 밥 내음으로 어린 나를 이끈다.(임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