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3호...
   2019년 1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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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13 꿩국 / 장현우
윤임수
3070 2012-06-20
꿩국 들쥐 떼가 고추밭 파헤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 라며 쥐덫을 놓았는데 쥐 대신 눈 먼 꿩이 잡혔다 과수 원 형님네 어르신들 신명이 났다 무 썰어 넣고 매운 고 추 풀어 얼얼한 꿩국보다 직접 담가 맛이 쩍쩍 앵기는 복분자술보다 탁탁 소리 내며 동짓죽이 끓고 있는 가마 솥보다 이 산동네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다는 허리 휜 어 르신들 찰진 말씀이 긴긴 밤 더 구수하다 * 장현우 시인은 농경사회의 따뜻한 공동체를 찾아서 잘 나가던 도시의 직장을 그만 두고 귀농했다. 그의 첫번째 시집 "귀농일기"는 귀농 이후 함께 지낸 사람들과 자연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런 생활에서 건져올린 시들이기에 한결같이 쉽고 편하다. 그러나 그 쉽고 편함 속에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 또한 한겨울 농촌 마을의 일순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꿩 한 마리를 모두가 나누어 먹는 공동체적인 소박한 삶과 밤새 이어지는 '허리 휜 어르신들 찰진 말씀'이 있다. 모두 모여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모두는 어르신들의 구수한 말씀을 따라 밝은 내일로 간다. 단순하면서도 정이 있고 많지 않으면서도 나눔이 있는 이런 모습에서 어르신들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모여 함께 밤을 새우는 다정함이 있으니 말이다. 그 푸근한 정경에 내 마음도 살며시 끼워넣고 싶다.  
212 題烏江亭 / 杜牧
임술랑
2270 2012-06-16
題烏江亭(제오강정) 杜牧(두목) 勝敗兵家事不期 ( 승패병가사불기 ) 包羞忍恥是男兒 ( 포수인치시남아 ) 江東子第多豪傑 ( 강동자제다호걸 ) 捲土重來未可知 ( 권토중래미가지 ) 병가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는 것 수치를 참는 것도 남아의 일이다 강동에 자제들 중에는 호걸이 많았으니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어찌 될지 몰랐으리 ................................................................................................................................................................... (감상) 劉邦은 項羽와의 싸움에서 72번을 패배했다고 한다. 맨날 쫓겨 다니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던 마지막에 항우를 쓰러트렸다. 항우는 그 굴욕을 참지 못한 것이다. 烏江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할 것을 권유 받았으나 듣지 않았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검에 엎드리어 자결했다. 천년 뒤에 역사의 현장을 지나던 시인은 그 자결을 아쉬워 한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모를 참는 것이 인생이다. 안 되면 다시 그래도 안 되면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언제나 늦은 때는 없는 것이다. (임술랑)  
211 詩 / 권덕하
윤임수
3165 2012-06-11
詩 휘파람 불듯 비눗방울 날리듯 입에서 새끼들 풀어 놓는 물고기 있다 찰나에 어미 입으로 숨어드는 목숨들 있다 물풀로 금줄 치고 부화 기다리다 주리고 주려서 뼈가 되고 살이 붙는 말 머금어 기를 수 있는 것이 자식들만 아니구나 곡절에 피어난 가슴을 치는 노랫말도 난생卵生이구나 눈감고 부르는 청 좋은 노래, 구전口傳하는 생명이여 *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권덕하 시인은 "주리고 주려서 뼈가 되고 살이 붙는 말"이고 "머금어 기를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곡절에 피어나 가슴을 치는 노랫말"이자 "눈감고 부르는 청 좋은 노래"라고도 합니다. 알로 태어나는 우리 시들이 생명의 날개를 달고 오래오래 구전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리고 머금어서 가슴을 치도록 해야겠지요?  
210 부처님 오신 날/서정주
임술랑
2391 2012-06-07
부처님 오신 날 -서정주 사자(獅子)가 업고 있는 방(房)에서 공부하던 소년(少年)들은 연(蓮)꽃이 이고 있는 방(房)으로 일학년(一學年)씩 진급(進級)하고, 불쌍한 아이야. / 불쌍한 아이야.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야. 너는 세상에서도 제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 돌을 울리는 물아. / 물을 울리는 돌아. 너희들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만(萬) 사랑의 심청(沈淸)이를 가진 뭇 심(沈) 봉사들도 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텔레비여. / 텔레비여. 도설천(兜率天) 너머 무운천(無雲天)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너머 아미타불토(阿彌陀佛土)의 사진들을 비치어 오라, 오늘은……. 삼천년전(三千年前) 자는 영원(永遠)을 불러 잠을 깨우고, 거기 두루 전화(電話)를 가설(架設)하고 우리 우주(宇宙)에 비로소 작고 큰 온갖 통로(通路)를 마련하신 석가모니(釋迦牟尼) 생일(生日)날에 앉아 계시나니. *1968년 5월. -『미당서정주시전집1』(민음사,1991) 우리나라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이다. 그가 일제강점기 서울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하고 방황할 때 중앙불교전문학교 제자로 받아준 이가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법명 정호) 대종사이다. 청년 미당이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었던 박한영 스님을 만난 것, 또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것은 그의 시 세계와 사상의 진경(眞境)을 펼쳐나가는 원뿌리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 51세 되던 해인 1968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쓴 작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으로 인해서 “공부하던 소년들은” “獅子가 업고 있는 房에서” “蓮꽃이 이고 있는 房으로/一學年씩 進級하고”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는 “세상에서도 제일로/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로 미당은 적고 있다. 그리고 또 이어진다. 이 세상의 사물인 ‘돌’과 ‘물’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뭇 沈 봉사들도/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층 더 맑고 선한 삶이 비롯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인해서. 위 시에서 미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시적 전언(傳言)의 핵심은 “자는 永遠을 불러 잠을 깨우고” “兜率天 너머/無雲天 非想非非想天 너머”에서 우리네 삶까지 “두루 電話를 架設하고” “작고 큰 온갖 通路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의 부처님 지혜로 밝혀놓은 이 ‘통로’는 바로 인연(因緣)과 인과(因果)의 법칙일 게다.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인연의 지엄함과 소중함을 깨닫고 절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함이다. 절하고 기도하는 삶은 결국 자기 참회를 통한 자기 변화일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생명의 거름을 주는 삶의 실천이 중요함을 깨닫는 하루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현담 이종암(시인)  
209 접견하다 / 김은령
윤임수
2217 2012-05-29
접견하다 서울 사는 오 모 시인이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해서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안부를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다 아내와 함께 도봉산 산행길에 들렀던 관음암에서 찍었다는 사진 한 장도 따라왔다 현판도 주련도 보이지 않는 당우 햇살이 사선으로 비켜 가는 섬돌 위에 나란히 계신 흰 고무신 한 켤레 닳고, 닳아서 찢어진 뒤꿈치를 이제는 사라진 일거리인, 이불 호청 꿰맬 때나 쓰는 굵은 흰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 나도 모르게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했다 * 두 손 정갈히 모으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인은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에서 부처님을 만나고 자신을 들여다 본다. 아주 작은 것에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시인이 나는 참 좋다. 지난 3월에 배달되어 온 시집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요즘에야 보고 있는데 불기 2556년 석가탄신일인 어제 이 시가 내게 딱 걸렸다. 부처님의 자비인 듯 고맙다. 이제 절집에 가면 혹시 꿰맨 고무신이 있는지 둘러보게 될 듯하다.  
208 봄/김재순 [1]
임술랑
2197 2012-05-21
봄 김재순 햇볕을 짙게 바른 담벼락 앞에 젊은 홍매 한 그루 수천의 잔가지를 성냥개비처럼 들고 있다 담벽에 가지 하나 확 그으면 화락 화락花樂 화락化樂 그대의 중년도 타오를 것이다 ..................................................................................................................................................... (감상) 망설임없이 곧 바로 불 붙는 사랑. 이유도 없고 因果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쓸쓸하고 누추한 세상에서 성냥불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화락 순식간에 불붙어 모두를 따뜻하게 하는 소중한 사랑인걸요. 아~ 님에 손길을 느끼면 나도 화락 타오를거예요.(임술랑)  
207 돌아가는 이유 / 이승진
임술랑
2111 2012-05-15
돌아가는 이유 이승진 남의 머리 물그릇으로 사용했던 그 분은 주인에게 얼마나 미안 했겠어? 돌아갈 수밖에는...... 게딱지에 밥 비벼먹다가 문득 그 분 생각하노니 남의 머리 밥그릇으로 사용한 나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미안해야 하는지 돌아서서 훌쩍이는 한 여인을 보았네. 돌아서서 훌쩍이는 바다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네 《건달바》2012 ................................................................................................................................................................ (감상) 남을 아프게 하고서는 자기가 즐거울 수 없다. 남을 밟고는 오롯이 설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은 共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元曉스님이 물그릇으로 알았던 쓸쓸한 해골 바가지, 이승진 시인이 밥그릇으로 사용한 게딱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짓밟지 않는가. 그러므로 시인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미안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 "돌아서서 훌쩍이는 바다"에서 우리가 "돌아가는 이유"를 묻는다.(임술랑)  
206 강을 따라 / 이달
김재순
2444 2012-05-02
강을 따라 / 손곡 이달 강변 십리길을 굽이굽이 돌아 꽃잎 속을 뚫고 가니 말발굽도 향기롭다 산천을 부질없이 오간다는 말 마소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하다오 해석 / 문태준 원문 江行 / 李達 路繞江干十里長 落花穿破馬蹄香 湖山莫道空往來 贏得新詩滿錦襄 다른 해석) 강변 십리길을 굽이굽이 돌아 수북수북 쌓인 꽃잎 말발굽도 향기로워라 산천을 부질없이 헤맨다 마오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한 것을 길은 강줄기를 십리나 길게 돌아 떨어진 꽃잎은 말발굽에 밟혀도 향기롭다 호수여 산이여 공연히 왕래한다 말하지 말라 새로지은 시가 비단 주머니에 가득하다네 피는 꽃잎 지는 꽃잎 온갖 꽃이 수북한 강변의 좁은 길을 말을 타고 지나가니 말발굽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꽃이 지고, 잎이 지고 머리카락 희어지고 홍안에 주름지고 그래서 인생은 허무한가요. 부질없나요 아니, 아니라고 합니다 마음에 시를 가득 넣어주니까요 무언가 깨닫고 성숙하게 하니까요 -김재순-  
205 달빛과 동침하다/박해자
임술랑
2386 2012-04-20
달빛과 동침하다 박해자 잠이 오지 않아 문을 여는 순간 45도 직사각으로 비스듬히 누운 그 반갑게 맞아주며 훤하게 누워 있다 한눈에 반해 덥석 품에 든다 환한 팔로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그 당신이 나를 찾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내가 환해지는 밤이다 [2011낙동강] ............................................................................................................................................................. (감상) 대저 物이란 그것도 거친 바탕질 따위 상대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인간은 거의 괘념치 않는 것이다. 그것은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여유분의 맘이 부족함 때문도 있어리라.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러한 염려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 틈으로 들어 온 달빛과의 교감을 통해 物에 대한 낯선 인식을 깨고 있는 것이다 .(임술랑)  
204 꽃 피는 철공소 / 백상웅
김재순
2959 2012-04-16
꽃 피는 철공소 / 백상웅 철공소 입구 자목련은 과연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망치질 소리가 앞마당에 울려퍼지면요 목련나무 우듬지에 남은 살얼음에 쨍 하고 금이 가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은 강철을 얇게 펴서 봄볕에 달구죠 한잎 한잎, 끝을 얌전하게 오므려 묶어서 한송이 두송이, 용접봉 푸른 불꽃으로 가지에 붙여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의 팔뚝에도 꽃이 벙글거려요 팔목에 힘을 줄 때마다 자목련꽃이 팽팽하게 열리죠 자색화상 위에 푸른 실핏줄이 돋아나요 그걸 보고 여자들이 봄날처럼 떠나기만 했대요 용접봉을 손아귀에 쥔 내 친구 스물일곱살 오늘은 철공소 마당에서 철목련을 매달아요 가지마다 목련꽃이 벌어져서 햇볕을 뿜어대죠 꽃 핀 철문은 허공에 경첩을 달고 식어가고 있고요 밤에는 하늘에다 꽃잎을 붙이느라 잠도 못 자요 20대는 어쩌면,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보다 이성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할 수도 있지요 여자들이 떠나고, 폼나는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낮에는 마당에 있는 나무에 꽃을 매달고, 밤에는 하늘에 꽃을 붙이느라 잠도 못자는 것은 친구, 용접공인 자신을 이토록 아름답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은 많은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 하나,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한 사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 한 사람을 더듬어 봅니다 --김재순--  
203 에밀레, 에밀레/서지월
임술랑
3670 2012-03-30
에밀레, 에밀레 서지월 서라벌 깊은 밤에 솥뚜껑이 우는구나 에밀레 -, 에밀레 - 어미의 간장 녹아서 발목 없는 귀신 천 리를 가듯 하늘엔 달이야 하나인데 부뚜막 위의 솥뚜껑, 부엌문 열고 나와서 눈물 흘리는 달빛 사이로 찢어진 천 갈래 만 갈래의 풀벌레 울음소리 찌르르 찌르르 문살을 훑고 누가 이 밤중 홀로 깨어 길을 가는가 부엌 아궁이 재도 사그라진 밤 솥뚜껑 저만이 허기진 배 움켜쥐고서 에밀레 -, 에밀레 - 토함산 그늘 아래 누가 만파식적 불어제껴 동해의 차운 물 덥혀 끌어올 수 있을까 어미는 절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밤 형체 없는 아기가 부뚜막 위에 걸터앉아 솥뚜껑 잡고 우는구나 애끓는 쇳물 속으로 들어간 아기가 오늘 밤은 어미 없는 부엌에 찾아와 밥 달라고 울어쌓는구나 [유심] 2012년 3/4월호 .................................................................................................................................................................................................................................................... (감상) 수시로 행주로 훔치고 닦았던 어머니의 솥, 솥뚜껑. 그 무쇠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던 어릴 때의 부엌. 밥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기를 어머니는 솥을 닦으며 빌었을 것이다. 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그 무쇳덩이가 내는 에밀레 소리. 서지월의 상상이 구수한 밥 내음으로 어린 나를 이끈다.(임술랑)  
202 저 못된 것들 / 이재무
김재순
2035 2012-03-26
저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 나를 꼬드기네 어깨에 둘러맨 가방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네 저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 나를 충동질하네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흐르는 냇물 시켜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네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저 밝은 햇살, 저 붉은 매화는 저기, 저만치서 희희덕거립니다. 젊은 남자와의 로맨스에 내 마음이 혹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의 꽃잎을 벌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봄날이 오히려 우울합니다. -김재순-  
201 글쎄, 목련꽃 한 송이가/김은령
임술랑
2069 2012-03-14
글쎄, 목련꽃 한 송이가/김은령 수타사 요사채에 우중충한 사람 여럿 모여있었는데요 저마다 수만 가지 생각들을 품고 수만 가지 알력을 겨루며 앉아있었는데요 마당 가 한 그루 목련 나무에서 봉긋한 꽃송이 하나가 공양주 보살 손에 살랑살랑 따라와서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맑은 차 주전자 속으로 살폿 들어갔다 이겁니다 아이쿠, 저 여린 꽃잎 다 짓무르겠다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 꽃송이 스르르 저를 다 열어젖히고는 달짝지근 젖 내음 뿜어내는데 아 글쎄, 그 순간 방안 가득 뻗쳐있던 그 수만 가지 알력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꼭 목련꽃 피는 소리로 들려 사람들 뱃속에 찰랑찰랑 꽃 피고, 마당 가득 꽃 피고 물결, 꽃물결 골목 밖으로 찰랑찰랑 넘쳐서는 세상도 덩달아 봄이 됩디다 피어남도 좋지만 순절도 참 괜찮다 싶데요 시집『차경借憬』 2012 황금알 ............................................................................................................................................................... (감상) 목련만큼 기쁜 꽃은 없습니다. "우중충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꽃, 그 꽃 보여주려고 또 봄이 오려나 봅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 "스르르 저를 다 열어젖히"는. 이처럼 가뜬한 세상으로 이끌리고 싶습니다.(임술랑)  
200 논산 백반집 / 문태준
김재순
2686 2012-03-13
논산 백반집 / 문태준 논산 백반집 여주인이 졸고 있었습니다 불룩한 배 위에 팔을 모은 채 고개를 천천히, 한없이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왼팔을 긁고 있었습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이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나붓나붓하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값을 쳐 술잔 옆에 놔두고 숨소리가 쌔근대는 논산 백반집을 떠나왔습니다 손님 대신 밀려온 졸음이지만 달콤합니다 여주인의 몸은 무거움에서 벗어나 나붓나붓 흔들립니다 시인은 웃거나 소리쳐 깨우지 않습니다 그 고달픔을 동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편안한 잠을 잠시라도 지켜줍니다 모든 사랑의 기본은 이런 것이겠지요 이런 시인을 사랑합니다 / 김재순  
199 채소밭에서/정대호
임술랑
2743 2012-03-02
채소밭에서/정대호 채소밭에 쪼그리고 앉아 상추와 배추를 뽑는다. 먼저 뽑는 기준은 조금 더 자랐고 조금 더 튼튼해 보이는 것이다. 조금 더 무성해 보이는 놈은 조금 더 욕심이 많은 것 같고 옆에 있는 것들에서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빼앗아 먹은 것 같고 제 혼자만 잘난 체 으스대는 것 같고 그놈을 뽑아야 바로 옆에 기 한 번 펴지 못하고 파리하게 비실거리는 것도 다음에는 조금 더 튼튼하게 자랄 것 같고 잘난 놈 그늘에 고개 한 번 내밀지 못하던 것들도 가슴 펴고 당당하게 바로 설 것 같고 바로 서서 제 말도 떳떳하게 해볼 것 같고 상추는 상추끼리 배추는 배추끼리 끼리끼리 잘 어울릴 것 같고 잘 어울려 재미나게 살 것 같고. 2012 『내가 뽑은 나의 시』 한국작가회의 ............................................................................................................................................................... (감상) 욕심껏 많이 먹고 웃자란 상추는 일찍 뽑히나 봅니다. "그놈을 뽑아야" 허허 ~, 좋은 자리라고 줄창 꿰차고 내놓지 않아도 뽑아야 합니다. 어지간히 해 먹었으면 내 놓을 것이지 쫓겨나야 되겠습니까. 옆자리도 좀 돌아보고 물러 설 줄도 알아야 안 되겠습니까. 작금 대선(2012.3.4)을 앞 둔 러시아 정국이 그것입니다. 푸틴이 8년을 집권하고도, 4년을 총리로 물러나 있다가(연임 금지 규정에 걸려서), 다시 대권을 쥐겠다고 나선 것 말입니다. 물론 그가 집권했을 때 러시아 주체성 확립에 어느 정도 공이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내가 좀 했으면 너도 좀하고 또 다른 사람도 대통령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꼭 나만을 고집해야 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잘 났다고 생각해도 더 잘 난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다수가 돌아가며 다스려 볼 때 다양한 사회발전이 되지 않겠습니까. 한 자리 꿰찼다고 죽을 때까지 물려주지 않는다면 그게 미개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언젠가는 뒤집힐 북한은 말도 안 되는 현실이고요. 이 시에서 시인은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임술랑)  
198 풍기아지매 / 안상학
김재순
3085 2012-02-14
풍기아지매 / 안상학 밤실 풍기아지매 이름은 신몽주래요 돌아가시고서야 처음 이름을 알았지요 영안실 밖 알림판에 망 신몽주 그 예쁜 이름 옷고름에 묻어두고 그저 풍기아지매로 평생을 살았지요 소실로 시집살이 안채에서 하룻밤 정도 없이 바깥채에서 그래도 배 아파 가며 아들 낳았지요 그나마 그 아들 소식 없이 객지 떠돌다 마흔 넘어 돌아와 장가들고 손주도 낳아 한 이태 사람 사는 것처럼 사는가 싶더니 박복한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요 더운 여름날 홀연 평생 묻어둔 이름 앞세우고 참으로 쓸쓸한 빈소를 차렸더이다. 상주는 달랑 하나지만 곡소리는 열 상주이더이다. 풍기아지매 울 아지매 죽어서도 남촌아제 옆에 못 가고 먼발치서 봉긋한 저승살림 차린 풍기아지매요. 소학교 여선생 출신, 면장집네 작은할머니 나 그 할머니를 얼마나 동경했는지 몰라 골목의 잡풀들은 그 할머니 때문에 양산을 펼친 듯 활짝 꽃 피웠는지도 몰라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땟국물이 흐르던 그 마을에서 어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지금도 궁금한 그 할머니의 안부, 그 할머니의 삶 그것이 비록 허무한 것일지라도... 어차피 다 허무한 것이니...--김재순--  
197 만행卍行 / 차영호
임술랑
2355 2012-02-11
만행卍行/차영호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다 목젖 뒤에서 가치작가치작 똥끝 타는 노루새끼 한나절 동당거렸다 크악 켘,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졌다 미늘 없는 직침直針으로 더 큰 고기 낚겠다고 너른 세상으로 튕겨나간 것일까 귓구멍도 없는 그 바늘 너불너불 해어진 내 속 찍어매려고 더 깊은 곳으로 몸피 가라앉혔는지도 모르지 시집『바람과 똥』2012 아르코 .................................................................................................................................................................................................................................... (감상) 알량한 먹이를 바늘끝에 꿰어 잔챙이 물고기를 울리던 그 가시(낚시바늘)가 내 목에 걸렸다. 버둥대는 나는 꼴 좋은 신세가 되었다. 너도 내 주둥일 꿰어 둘머쳤으니, 내가 찌르는 바늘 맛을 보아라. 槍劍이 水陸을 넘나든다. 허허! 재밌어요 ^^ (임술랑)  
196 눈/서정주
임술랑
3065 2012-01-19
눈/서정주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 솔나무 나막신에 紅唐木 조끼 입고 생겨나서 처음으로 歲拜 가는 길이였다.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 萬歲 부르다가 채찍으로 얻어맞고 학교에서 쫓겨나서 帽子 벗어 팽개치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 風月 팔아 술 마시고 좁쌀도 쌀도 없는 주린 아내 곁으로 黃土재의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였다. 시방도 나는 눈을 보고 있다. 거느린 것은 한 떼의 바람과 形體도 없는 몇 사람의 亡靈 뿐, 이제는 갈 데도 올 데도 없는 미련한 미련한 韻律의 實務曺長이여. 눈을 보러 눈을 보러 온 것이다. 나는 해마다 내려서는 내 앞에 쌓이는 하이얀 하이얀 눈을 보려고 까닭없는 이 땅을 다니러 온 것이다. ............................................................................................................................................................................................................................................................ (감상) 미당이 일군 운율은 가히 마약과도 같다. 읽고 또 읽어도 그 律은 죽지를 않고 오히려 맘 속에 녹아서 노래로 부활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7.5조 가락이 숨어 한몫 하는 것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미당의 시적 감각과 시적 상상이 그 중요한 힘일 것이다. "그때에도 나는 눈을 보고 있었다."라고 시간대별로 반복되는 이 시는 미당의 생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 같기도 하다. 온 천지가 순백의 환한 세상을 만드는 눈을 보고 경이에 찼으나 이내 녹고마는 허무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까닭없는 이 땅을 다니러 온 것이다."라고 귀결되는 슬픔을 읽게되는 것이다.(임술랑)  
195 눈이 내린다 / 박영근
김재순
2550 2012-01-09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나는 평양에 가겠다 공단거리 지쳐버린 사원임대아파트에 핏빛으로 몰려 오는 눈보라로 가겠다 일용직으로 떨어져 일용직으로 떨어져 바라보는 인원감축합의문 벌겋게 찍힌 노동조합 그 이름으로 가겠다 거리엔 백화점과 술집들이 온통 불빛들을 터트리고 그 불빛 속에 내 눈물속에 비치는 외줄기 낭떨어지길로 가겠다 이것이 노여움인지 사랑인지 나는 모른다 쌀이 좋다는 재령평야도 눈이 많다는 국경 마을도 나는 모른다 이 눈물이 아픔인지 비굴함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바람 속에 저렇게 떨고 있는 눈송이들을 위해 시커멓게 밟혀버릴 눈송이들을 위해 단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신경림 시인은 이 시를 읽으면서 속으로 몇 번인가 울며 최상의 시란 어떤 것인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조정래 선생은 아리랑을 집필하면서 일본 침략기 때 죽어간 400만 우리 동포를 원고지 칸칸이 채웠다고 합니다 '작가 정신' 의 ㅈ 도 모르면서 나는 무얼 詩 라고 주장하며 쓰고 있는지... - 김재순-  
194 황태덕장에 내리는 눈/임연규
임술랑
2729 2011-12-25
황태덕장에 내리는 눈/임연규 이승의 곡기穀氣를 어쩌지 못하고 있구나. 하늘 향해 일제히 벌린 입 한낮 청빈한 겨울 햇살만 입에 가득 고이고 오늘도 지척을 알 수 없이 퍼붓는 폭설이 게걸한 네 입에는 밥이 되지 않는구나. 우리는 이렇게 살았구나. 일생 먹잇감을 쫓다 붙잡힌 불경죄로 대관령 산중에서 내 죄를 내가 아는 줄줄이 형을 받고도 닫지 못하는 입 끝내 어쩌지 못하고 있구나. 시집『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2008 ................................................................................................................................................................................................................................................ (감상) 우리가 입에 당기는 맛과 허기를 어쩌지 못 하듯 깨끗한 바닷속을 헤엄치는 명태도 그 게걸스런 입이 욕이 되어 대관령 춥디 추운 벌판에 입을 꿰어 형벌을 받고 있으니. 오죽하랴. 내 죄! 내가 알렸다.(임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