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황동규

 

 

 

빈센트 반 고흐처럼

계속 물감을 바르라 보채는 캔버스를 벗어나

어디 숨 좀 쉴 공기를 찾아 피스톨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

까마귀 줄지어 나르는 누런 밀밭이 아직 있을까?

 

가며가며 금속피로처럼 쌓이는 마음의 안개 잠시 밀어내고

과일과 과자 꾸러미를 사들고

뵈지 않게 숨어서 우는 아이들을 찾아가

‘눈물 그만, 여기 맛있는 사과와 과자가 있네!’ 달래

울음을 그치게 하고

파워레인저 로봇들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이제 나는 가도 되지?’ 말하고

넌지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눈 한번 딱 감고 걸어

사방에 아무도 없이 밑불들만 간지럼 타듯 타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까?

 

 

 

-황동규 시집『겨울밤 0시 50분』(현대문학,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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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의 근작 시집『겨울밤 0시 50분』에 읽은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시이다. 황동규 시인은 일찍이 죽음에 관한 시적 사유를 십몇 년에 걸쳐 진행하면서『풍장』(문학과지성사,1995)이라는 기념비적인 연작 시집을 상재한 바 있다. 죽음은 삶과 불가결의 요소를 이루고 있다. 죽음 없이는 삶도 없고, 삶 없이 죽음 또한 없다. “계속 물감을 바르라 보채는 캔버스”가 고단한 여기의 삶을 비유한 것이라면, “사방에 아무도 없이 밑불들만 간지럼 타듯 타는 곳”이 저기의 죽음을 비유한 것이리라. 여기(이승)에서 저기(저승)로 건너가기 전에 노(老) 시인이 하려고 하는 것은 우는 아이를 찾아가 과일과 과자 꾸러미를 내밀어 울음을 그치게 하고 파워레인저 로봇들을 아이들 손에 들려주는 일이다. 그리고 “넌지시 세상 밖으로 나갈”려고 한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여기의 삶과 저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황동규 선생의 마음의 색깔은 부사어 ‘넌지시’에 모아져있다 하겠다. 요란스럽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슬쩍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려 한다. 그러나 죽어보지 않고서는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 행 “나갈 수 있을까?”에 삶과 죽음에 관한 내 마음을 얹고 고개를 바닥에다 숙인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