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도

 

 

 

나는 둥그런 산에 산다

나무와 밭으로 뒤덮인 산,

숲에서 나온 물줄기는 밭을 가로질러 산 아래 들판으로 흐른다

가끔은 구름이 내 오두막을 감싸기도 한다

 

내 산엔 산 같은 무덤들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도 산에 묻혔다

아버진 말이 없는 분이셨다

얼굴을 본 기억이 없는 어머닌 노래를 잘 부르셨다고 한다

 

이제 출산 날이 다가온 아내의 배를 보니

무덤을 참 많이도 닮았다

 

 

 

 

-유승도 시집『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창작과비평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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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의 첫 시집『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의 여러 시편들 가운데 위「산」이라는 시가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유승도 시인은 시의 언술처럼 지금도 산에서 살고 있다. 그는 산의 팔부 능선에 화전민들이 버리고 간 빈집과 밭뙈기를 얻어다가 아내와 어린 자식 하나를 데리고 벌을 치고 밭농사를 하며 살고 있다. 낮에는 흙을 만지고 밤에는 밤바람 소리 아래서 언어를 매만지며 시를 쓰는 이른바 자연산 시인이다. 높은 산 위에 있는 그의 현주소지 강원도 영월군 예밀리 267번지에 두 번째로 갔다 온 지가 벌써 몇 해가 지나가버린 지 모르겠다. 가까이 있는 시인들 몇이 찾아가 가을걷이를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도 그렇게 몇 년을 넘겨버렸다. 그리 별로 말이 없던 시인의 아들 녀석은 지금쯤 중학생이 되었을라나, 잘 있는지 궁금하다. 둥그런 산에는 산 같이 둥그런, 불룩한 무덤이 많다. 저 무덤들 속에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어가 계시고, 또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도 들어가 계신다. 나중에 나도 그리로 들어가야만 한다. 무덤은 우리의 영원한 집(幽宅)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은 출산 직전 아내의 둥그런 배가 무덤과 참 많이 닮았다 한다. 그 둥그런 아내의 배는 이 세상 내 끈을 이어나갈 아이가 들어가 있는 곳이다. 나는 한때 경주 대릉원 담장 너머로 보이는 왕릉의 곡선에 매료되어 뻔질나게 경주를 찾은 적이 있다. 단언하건대,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곡선은 출산 날이 다가온 아내의 불룩한 배가 그려내는 그 곡선이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