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여승’을 가르치는 시간/김경윤


창밖에는 봄꽃들이 만발했다

저 홀로 핀 화사한 꽃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꽃들은 저희들끼리 수런거리며 논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한 행 두 행 시를 읽는다

산절의 마당귀에 떨어진 여승의 머리올처럼*

가슴 속에 스미는 낱말들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시에 취해

눈앞이 흐리다

선생의 목소린 아랑곳없이

무논에 악머구리 끓듯 조잘대던 아이들

내 젖은 눈빛에 전염이라도 된 듯

아이들 눈동자에도 영산홍 붉게 피었다 진다

일순, 교실 안이 물방개 놀다간 못물처럼 고요하다.



*백석 시 ⌜여승⌟중에서

 

 

여 승(女僧)/백석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무논의 악머구리처럼 떠들던 아이들은

백석 시인의 여승을 읽어 내려가다가 목소리가 젖고

눈빛이 젖는 선생님의 마음이 번져 함께 못물이 되었습니다.


내 고향 뒷산에도 금굴이 3개 정도 있는데 

여승은 어쩌면 내 고향 뒷산까지 와서 옥수수를 팔았고

내 할머니와 친분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는 내 할아버지의 동료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힘든 시대를 헤치며 살다간 사람들,

김경윤 선생님과 아이들처럼 내 마음도 젖습니다. -김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