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이홍섭

 

 

 

젊은 장정도 오르기 힘든 깔딱고개를 넘어온 노파는

향 한 뭉치와 쌀 한 봉지를 꺼냈다

이제 살아서 다시 오지 못할 거라며

속곳 뒤집어 꼬깃꼬깃한 쌈짓돈도 모두 내놓았다

그리고는 보이지도 않는 부처님전에 절 세 번을 올리고

내처 깔딱고개를 내려갔다

 

시방 영감이 아프다고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고

 

 

 

-이홍섭 시집『숨결』(현대문학북스,2002)

 

-------------------------------------------------------------------------------------------------------------------------------------

 

“깔딱고개”라는 시어가 참 재미있다. 깔딱고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봉정암(설악산 소청봉 서북쪽 해발1244m) 가는 고갯길 이름이다. 이 깔딱고개는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 숨이 깔딱깔딱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노파와 병든 영감의 목숨이라는 의미도 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시어 ‘깔딱고개’는 8行의 짧은 위 시에서 시적 분위기와 주제를 피워 올리는 중요한 장작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부처의 사리가 봉안된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봉정암으로 한 노파가 이 깔딱고개를 깔딱깔딱 넘어간다. 젊은 장정도 오르기 힘들다는 깔딱고개를 넘어와 향 한 뭉치와 쌀 한 봉지, 이제 살아서 다시 오지 못할 거라며 속곡 뒤집어 꼬깃꼬깃 쌈짓돈 모두 내놓는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다. 적멸보궁이라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설악산 봉정암에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잘은 모르지만, “시방 영감이 아프다고/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고”, “내처 깔딱고개를 내려”가는 저 노파의 마음자리가 바로 적멸보궁이 아닐까. 부처(佛陀)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내 집에 있는 부모가 부처요, 부부가, 자식이 곧 부처다. 또 내 이웃이 부처다. 우리들 살아가는 곳곳의 마당이 법당이고 예배당이어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은 죽임의 곳이 아니라 살림의 곳이 될 터.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