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가 쓰러지셨다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를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이재무 시선집『오래된 농담』(북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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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인 고목 팽나무의 쓰러짐에 대한 조사(弔詞)이다. 쓰러진 고목 팽나무는 이재무의 어린 시절 꿈과 어설픈 연애를 다 받아주던 ‘당신’이었다. 당신, 고향 마을에 입구에 서 있던 노거수인 팽나무와 그 행위에 시인은 시종 극존칭(당신)과 주체높임(-시-)을 쓰고 있다. 이는 시인의 삶에 그만큼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던 존재의 쓰러짐이기 때문이다. 텅 빈 몸으로 입적하는 마지막까지도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삶의 깨달음을 준 당신의 쓰러짐에 대한 화자의 애석함이 시 행간 곳곳에 배어있다. “돌아, 가시었다”의 <돌아>와 <가시었다> 사이의 쉼표(,) 사용에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던 이 팽나무의 쓰러짐은 지난 연대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자는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라고 말로 시를 끝맺고 있다. 고향 마을의 당나무, 고향집, 고향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쓰러짐은 이렇게 젖은 물기를 띠고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애석하고 슬픈 일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사라진 그들을 올려다보자.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