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 봐라


   이중기


   바람 한 점 없이 숨 콱 막히는 들판에서

   한 삼 년, 불땀 흘리지 않았다면

   생말등에 앉아 건들건들

   이 강산 낙화유수 표절하지 말거라


   노계蘆溪 봐라

   삶도 시도 몸으로 했다

   풍경을 착취하면 시는 넝마가 되는 것,

   목 붉은 꿩고기도 잘 익은 술도 없이

   밭 갈 소 구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밤,

   초라한 풍채에 개가 짖었다는 <누항사陋巷詞'> 봐라

   그 한탄, 서정시에 대한 경고로 읽었다


   키 낮은 상형문자 봉분들 한려閑麗처럼 떠있는

   대랑산大朗山 기슭 노계 무덤 봐라

   거기 달랑 난쟁이 빗돌 하나,

   후손들 염소고집 염치가 맑고 또 곱다

   봉인된 그 무엇 마구 터뜨리지 못해 삐죽이는

   뻐꾹채 앙다문 슬픔 위로 목 붉은 장끼울음 깔린다



   ***

   시집의 발문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산문 '내 시에 대한 변명'에서 '시를 쓰면서 내 삶과 주변 풍경을 예찬할 줄 몰랐'다고 고백하는 영천의 이중기 시인이 새 시집 <영천아리랑>을 냈다. '근현대사는 적산가옥 뒷골목에 파묻어놓은 채 왕조의 기왓장만 뒤적거리'는 '영천향토사연구회'를 대신해 이중기 시인은 새 시집 <영천아리랑>에서 영천의 근현대사를 복원했다. <영천아리랑>은 말 그대로 영천의 근현대사요, 근현대의 인물사이다. '노계 봐라'는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시로 나는 이 시를 시인의 시론으로 읽었다. 개인의 자폐적 서정과 음풍농월이 주류를 이루는 시단에서 시인이 풀어놓은 건 서정이 아닌 것이 아니라 우리 시단이 다시 제대로 살려내야 할 사회적 서정이다.  많은 시들을 나는 몸서리를 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