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중세

 

박후기

 

 

맨 처음,

죽은 자의 무덤에 돌을 얹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을 헤아린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었으니,

더 이상 죽음을 피해

달아나지 말라는 당부였을까?

 

가슴에 돌처럼 무거운 손을 얹으며,

교황은 아침 늦게 광장에 도착했다

 

교황이 머문 며칠 동안

해가 지지 않았다

어둠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성의 여왕은 말문마저 닫은 채

연대기적 패륜의 완성에 몰두했다

 

소년 소녀들은 제물이 되어

바닷속으로 던져졌고, 그들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딸을 잃고 말을 잃은

한 소녀의 아버지가 광장 구석에서

돌베개를 베고 미라가 되어갔다

 

여왕의 힘 센 정부는 소문대로

그녀의 임시정부였으므로,

무너지는 나라 안에서 검은 음모만 무성했다

 

산 채로,

인간을 매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

아물지도, 제대로 이름을 얻지도 못한 상처들이 또 해를 넘어옵니다. 이름을 제대로 얻어야 상처를 아물릴 건데, 아물리기는커녕 상처에 패륜과 음모의 더 큰 온갖 상처를 덧대면서 해는 또 넘어옵니다.  '산 채로, / 인간을 매장하던' 시절이 끝이 났다고, 나리라고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그 시절이 멀지 않은 듯한데 어째 아마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