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블루스

 

김사인

 

 

국정원은 내곡동에 있고

뭐랄 수도 없는 국정원은 내곡동에나 있고

모두 무서워만 하는 국정원은 알 사람이나 아는 내곡동에 박혀 있고

 

국정원은 내 친구 박정원과 이름이 같고

제자 전정원은 아직도 시집을 못 갔을 것 같고

최정원 김정원도 여럿이었고

성이 국씨가 아닌 줄은 알지만

그러나 정원이란 이름은 얼마나 품위 있고 서정적인가

정다울 정 집 원, 비원 곁에 있음직한 이름

나라 국은 또 얼마나 장중한 관형어인가

국정원은 내곡동에 있고

내곡동에는 비가 내리고

바바리 깃을 세운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사내가

지포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며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죄우를 빠르게 훑어볼 것 같은 국정원의 정문에는

<007 두번 산다>의 그런 인물들은 보이지 않고

다만 비가 내리고

어깨에 뽕을 넣은 깍둑머리 젊은 병사가

충성을 외칠 뿐이고

할 수만 있다면

저 우울하고 뻣뻣한 목과 어깨와 눈빛에 대고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위로하고 싶은 것이고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하니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과 같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하니

좀 음산하지만 또 겸허하게도 느껴지고

아무튼 모른다 아무도

다만 비가 내릴 뿐

우울히 비가 내릴 뿐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밖의 삼인칭 우수마발도 알 리 없고

원격 투시하는 천안통 빅브라더께서는?

그러나 그야 관심이나 있을까

내곡동의 비에 대해

내뿜는 담배연기에 대해

우수 어린 내곡동 바바리코트에 대해

신경질적인 가래침에 대해

하느님은 아실까

그러나 그걸 알 사람도 또한 국정원뿐

그러나 내곡동엔 다만 비가 내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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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덮으면서, 아홉살에 겪은 가난의 기억을 노래한 '비둘기호'에 대하여, 언젠가 시로도 쓴 내 대여섯살쯤의 기억에 대하여 쓰려고 했는데, 언젠가 추억팔이 영화에 모 문화평론가가 한마디 했다가 크게 논란이 된 '정신승리가 문득 떠올라 접고, 지금 현재의 노래, 잘 나가는 현재의 리듬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것 또한 추억이 되어야 할 추억팔이 영화라는, 이런 추억팔이 영화를 지금껏 보고 사는 우리 모두가 정신승리라는, 이런 얄궂은 생각 또 문득 떠오르네요. 얄궂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