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규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 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 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울면서 하던 레퍼토리는 늘 같은 이야기. 지겨워서 전화를 끊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또 오래 전화가 없으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화성 씨랜드 화재사고가 나던 그 해에는 전화를 받으면서 같이 울기도 했습니다. 내가 운 건 친구의 사연 때문도 친구의 울음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의 나이가 딱 씨랜드 화재에서 숨진 아이들 또래였고 친구가 자기 딸이 보고 싶다고 해서였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늘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먹고 쉴 때 쯤. 늘 술에 조금 취한 목소리였습니다. '갈까' 그러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디야' 하면 늘 집이라 했습니다. 집, 어머니의 집. 친구가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살아계셨던 어머니는 그 해에 돌아가셨더랬습니다. 하니 친구의 고향집에는 친구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있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반주로 술 몇 잔 걸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가 전화를 한 것이었을까요. 아님 친구의 집 바로 아래 집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혼자 소주를 홀짝이다 전화를 한 걸까요. '갈까' 말만 꺼내놓고 오지말라는 친구의 말을 핑계 삼곤 한 번도 가지 않았으니 실상 친구가 어디에서 전화를 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이 친구를 다시 만난 건 거의 이십여년만이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났었고 그 동안 아무와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는 또 우리 동창들보다 한 해 선배여서 바닷가 작은 마을 앞뒷집에 살았던 친구들 몇몇만 어쩌다 소식을 듣는 정도였습니다. '어쩌다'라는 말 아시지요. 우연히, 오다가다, 어떤 의도도 없이. 이십여년만에 이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이 친구는 몸도 마음도 모두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십여년만에 내가 다시 만난 이 친구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먼저 전화를 하고 찾아와서 만났더랬습니다. 몇 번 술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는 시간에 이 친구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 동안 연락이 없기에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느 도시에 있는 병원이라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갈까' 했더니 곧 퇴원할 거라고 퇴원해서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꽤 오랫동안 전화가 없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식구들을 떠나 혼자 타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그 날도 직원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자정이 다 되어 자취방에 들어왔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의 전화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친구를 통한 친구의 전화. "그 친구 죽었단다. 소식 들은 여기 있는 우리들은 누군지 몰라서 그냥 있었는데 늦게서야 네가 안다는 생각이 났다." 누님인가 유일한 혈육이 살고 있던 도시의 병원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친구들이 어찌어찌 중학교 동창의 부음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을 찾긴 했는데 아무도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없다더군요. 기억이 없는 죽은 동창 앞에서 그 친구들, 한 동네 뒷집에 살던 비행기 조종사를 하는 친구가 새벽에 도착할 때까지는 있겠다고 하더라는군요.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밤 택시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도착한 그 도시의 화장장에서 나는 친구의 아내와 딸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내는 젊었고 딸은 어렸습니다. 식구들과 거의 떨어져 살다가 아이가 미처 말을 배우기도 전에 헤어졌다고 하니 아이는 아빠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정을 들고 물끄러미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는 그저 맑았습니다. 아이는 아직 슬픔을 알기 전의 나이였습니다. 화장장에는 친구에 대한 기억이 없는 친구들은 다 가고 없고 새벽에 도착한 조종사 친구만 남아 쓸쓸히 공원묘지의 무덤들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 내게는 이후 절대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어서 어쩌다 한 번씩 떠오르더니 이번엔 이규리 시인의 시에 실려 떠오르는군요.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서 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떠난지도 벌써 십년이 훨씬 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