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소리

- 원자력 시대의 시

 

장이지

 

 

체육관은 천장이 높고 쓸쓸했다.

하얀 벽에 가슴이 휑한 창이 나 있었다.

낮에 코피를 흘리며 파랗게 쓰러진

남자 생각이 났다.

남자는 죽었을까. 죽어서 원혼이 되었을까.

우라늄의 달빛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체육관을 네 구역으로 나누어

난민들을 채워나갔다.

가족의 소식이 궁금한 노파 하나가

쭈그러진 얼굴을 하고

이불 보따리 위에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전화를 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을 마신 남자들이

배를 세우고 오랫동안

당국에 화를 냈다.

 

그러고는 다시 적막했다.

모두들 마음의 끝이 눅눅해졌다.

길 잃은 개가

꼬리를 말고 와서

체육관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디에도 주인은 없었다.

 

체육관 한구석에서

한 소년이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어른들에게

야단맞지 않을까 싶었다.

아저씨의 충혈된 눈이

소년 쪽을 잠시 훑었다.

모두들 소년 쪽을 외면하면서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눈치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멀고먼 외국의 민요처럼 처량했다.

 

달과 별이 수놓인 어머니의 치마와도 같이 나풀거렸다.

아, 어머니 냄새......,

소년은 울음이 잦아든 맑은 얼굴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누군가 화를 내면 어쩌나 싶기도 했지만,

누구나 묵묵히 하모니카 소리에

귀를 적시고 있었다.

 

높고 쓸쓸한 체육관의 천장까지

소리는 날아올랐다가

하얗고 하얀 깃털로

내려앉고 있었다.

 

 

***

'원자력 시대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장이지 시인의 여러 편의 시 중 한 편입니다. 난민촌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소년의 모습은 만화 영화에서 본 듯한 풍경입니다만 이것은 시인이 시적 상상력으로 구성한 이야기가 아닌 2011년 3월 11일 이후 일본의 어느 지역의 실제 상황을 재구성해서 쓴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읽는 내내 가을의 끝자락에 선 듯 쓸쓸하고 적막해졌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이후, 원자력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저 역시 이 시인처럼  미처 장마를 다 못 벗어난 빨래마냥 자주 처량하게 눅눅해지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