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동물원에서 시작되었다

 

  김성대

 

  그것은 필요 이상의 전력 질주였고 예상외로 빨랐다

 

  그들은 자신의 특징을 하나둘 지워나갔다 코끼리는 코를 얼룩무늬뱀은 얼룩을 긴꼬리원숭이는 꼬리를

 

  그것은 결핍도 절실이나 잉여도 아닌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를 무엇을 닮아가기 위한 질주 같았다 모두가 나인 것 같지만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것들이 뒤섞인 어떤 마비

 

  그들은 예상을 벗어나 인간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몸에 가뭄이 들 만큼 긴 울음으로 코끼리는 인간의 입술을 얼룩무늬뱀은 살갗을 긴꼬리원숭이는 손을

 

  인간을 닮아가는 일이 그들에게는 감염 같은 것이어서 그들은 점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맡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을 지우고 인간의 몸을 살아가는 그것은 인간의 감각으로 인간을 망각해보려는 것이었을까 인간의 몸으로 자신을 만지면서 그들은 자신의 외부에 있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 들고 서 있는 하나의 얼굴로 동물원은 고요해졌다 그들의 몸 밖에서 울음이 말라붙는 동안 추위가 시작되었다

 

  자신을 보러 겨울 동물원에 가는 일

 

  인간들이 인간을 지우기 시작한다

 

 

   - 김성대 『사막 식당』창비 2013

 

 

 

***

  ‘나는 하류 인생’이라 느끼는 이가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소비 수준을 기준으로 자신을 하류층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2002년 17.7%에서 올해 34.8%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80.1%에서 62.5%로 쪼그라들었다. 가계에 가장 부담을 주는 소비 항목은 11년 전의 교육비에서 최근 식비로 바뀌었다. 먹고 사는 자체가 팍팍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중산층 70% 재건’을 약속한 정부는 이 결과를 보며 이렇게 다짐할지도 모르겠다. 제가 해결할게요, 느낌 아니까~. 레알? (「한겨레21」 2013.9.16 제978호 ‘통계 뒤집기 - 나도 하류다’)

  시와 기사가 동시에 같은 느낌으로 왔습니다. ‘왜?’냐고 묻지는 마세요. 느낌이니까.

 

  불안한 공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아둔 그 무엇을 차례대로 풀어내는 흐름이 떠도는 불안한 공기에서 느껴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느낌이 말보다 더 정확합니다.

 

  ‘그것은 결핍도 절실이나 잉여도 아닌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를’ ‘필요 이상의 전력 질주였고 예상외로 빨랐다’ 우리는 너무 빨리 눈을 감았습니다.

 

  ‘인간들이 인간을 지우기 시작한다’ 느낌이 오시나요. 이제라도 감았던 눈 뜨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 느낌, 아시지요. 익숙한 느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