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훈련

 

현 택 훈

 

우리가 지난 겨울에

다녀온 전지훈련지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겨울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푸른 남쪽이었다.

전지훈련이야 해마다 겨울이면 가는 것이지만

그 도시는 처음이었다.

갈매기가 시청 앞까지 날아오고

맑은 날엔 돌고래의 유영을 볼 수 있는

낯설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걸음이 느렸다.

횡단보도를 아주 천천히 건너는데

차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차들도 느릿느릿 솔바람처럼 다녔다.

우리는 오전엔 몸을 살살 푸는 것이 전부였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았기에

느슨하게 연습경기를 했다.

평화롭고 부드러운 경기였다.

다음 시즌에 대한 포부나 준비가

점점 옅어졌다.

우리는 마법에 걸린 듯 느리게 움직였다.

시간도 달팽이처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봄이 되자 라인업이 짜였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 도시를 빠져나왔다.

이제 다시 시즌이 시작될 테고

환희와 절망의 미로를 헤맬 것이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난 겨울에 다녀온

전지훈련지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아

다시는 전지훈련지로 택하지 않겠지만

경기 도중에도 문득문득 그곳을 그리워할 것 같다.

벤치에 앉아 경기장 위를 나는 갈매기를 그려볼 것이다.

락커룸에서 유니폼을 벗다가 푸른 바다가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지난 겨울에 다녀온 전지훈련지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 계간『리토피아』2013 가을 

 

 

***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사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찾아보면 뭐 유별나거나 특별하다고 할 일과 사물은 하나 없는데 나는 또 불안합니다. 이유 없는 불안입니다. 이유 없이 이어지며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날들입니다. 하루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앉아서 불안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이것? 아님, 저것? 아님, 그것? 아님, 이것과 저것? 아님, 이것과 저것과 그것? 이리 둘러보고 저리 살펴보고, 이것과 저것과 그것을 떼었다가 보고 붙였다가 보아도 어디에도 지금의 이 이어지는 불안을 충족시킬만한 조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대체 스멀스멀 샘처럼 솟아오르며 뱀처럼 기어오르는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

   천천히 걷는 사람들과 느릿느릿 다니는 차들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들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아무런 꿈이나 욕정이나 생각도 없이 그 자연스레 흐르는 리듬을 타고, 하루, 이틀, 사흘...... 흐르고 싶어라. 시의 리듬을 타다가 멈추자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입에서 터집니다. 아, 그 곳에 가고 싶다. ‘우리가 지난 겨울에 다녀온 전지훈련지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우리가 지난 겨울에 다녀온 전지훈련지는......’ ‘우리가 지난 겨울에 다녀온......’ ‘우리가 지난 겨울에......’ ‘우리가 지난......’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