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진화

 

꽃 속으로는 고운 사람의 발길만 오가는 게 아니어서

꽃 속으로는 꽃 소식만 오가는 게 아니어서

화염처럼 터지기도 하고

황하를 건넌 모래바람에 짓눌려

꽃씨들은 미처 부화하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신이 우리에게 부친 편지를 다 읽기 전에 해는 시들고

물새들이 강을 건너오기 전에

강물은 바짝 말라버릴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도 전에

내 기다림은 지루함과 고독으로 병들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처럼 빛나는 날이면 나는

한 포기의 꽃나무를 심고

바람에 부스스 잠이 깬 열매들을 거두어

술을 담글 겁니다

 

항아리는 옹기쟁이의 체온으로 아직 따뜻하고

신의 입김으로 인해 우물물은 아직 썩지 않았습니다

사과 속엔 벌레가 지나간 무수한 길들이 있고

단내 나는 그 길에는

발효의 시간을 기다리는 당신과 내가 있습니다

오랜 침묵이 빚어내는 풍화의 쓴맛,

우리도 곧 보게 되겠지요

별빛 쏟아지는 취향의 그 길 위에

언젠가 우리가 함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문을 열어주세요 당신

일몰이 서역을 넘기 전에 손을 잡아주세요

피와 살 한데 섞어 우리

사과향 짙어가는 그곳으로 함께 가요

퍼붓는 총알을 멈추고

겨자씨만한 한 생명도 흙 속에 품어낼 사람

아주 먼 사막이라도

온밤을 걸어 나와 함께 갈 사람,

사랑은 그렇게 천천히 어둠을 거두는 것

향기는 그늘도 모르게 익어가고 있어요

 

다시 태어나는 법을 나는 모르므로

어둠이 뿌린 빗살 계단을 밟고 오세요 당신,

기꺼이 손을 잡아드릴 테니

금간 당신 뼛속에 내 입김을

불어넣어 드릴 테니

                                     - 시집 "불량 젤리"에서 

 

 

* 온통 꽃세상이다. 

   하얗고 노랗고 붉으스름한 꽃들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나도 그대에게 꽃으로 빛나고 싶다.

   그대를 위해 한 포기의 꽃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그대를 위해 달콤한 술을 빚고 싶다.

   그러니 우리 총알 따위는 버리고 겨자씨만한 생명이라도 하나씩 품고 함께 가자.

   온밤을 걸어서 천천히 어둠을 거두면서 함께 가자.

   함께 가는 우리 옆에서 그늘도 기꺼이 곱게 익어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