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정세훈


햇볕 쨍쨍한 날
지렁이가 기어가고 있다.

저렇게 기어가다간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메마른 보도블록 위를
꿈틀꿈틀 기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그 길을,
목숨 걸고 가고 있다.
 

 

          시집『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2006 시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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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목숨이란 이렇게 잔인하다. 오늘 우리집 개가 쥐약 먹어 비실거리던 쥐를 깨물어 죽였다.

쥐약을 먹어 가만히 있어도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죽을 것인데, 그 쥐가 마당으로 자꾸 기어 나와서

내가 쫓으니 묶여 있는 깜동이(개) 쪽으로 비실비실 도망가다가 깜동이 이빨에 깨물린 것이었다.

"지금 당장 /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그 길이었던가 .마른 마당에 기어나온 지렁이처럼, 깨물려 눈알이

튀어나온 現象이 우리가 가진 목숨의 앞날인가. 生이란 이렇게 슬프다.(임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