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연옥

“이 세상은 항상 폐허야. 하지만 우리에겐 작은 기회가 있어.

만약 우리가 아주,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선을 상상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파손된 것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낼 수 있어. 조금씩, 조금씩.

- 제이 파리니,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에서

 

김 승 희

 

그리고 그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작은 마을

안전지대에 도착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세상은 항상 그런 최후로 가득 차 있다

파손된 것들을 복구하는 방법 너머로

가을이 온다

어디서 그런 절벽들이 푸른 포도밭 과수원 뒤에 아득하다

 

포도밭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피레네산맥을 백 번을 넘어도 그 너머 그 너머에도

폐허와 절벽이 가득 차 있는 가을 풍경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눈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감옥 그 너머의 감옥, 절벽 그 너머의 절벽, 최후 그 너머의 최후

산맥을 넘고 넘어도 산맥

산맥 그 너머의 산맥, 절벽 그 너머의 절벽, 최후 그 너머의 최후

 

우리는 그런 것을 감옥이라고 부른다

희망의 연옥이라고

 

- 시집 『희망이 외롭다』문학동네 2012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을 탁월하게 분석한 불우한 사상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서 스페인 입국이 좌절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최성일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서 인용)

  ‘그리고 그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 스페인 작은 마을 / 안전지대에 도착한 뒤 /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안전지대’라니? ‘안전지대’였는데? ‘안전지대’에서?

  ‘이 세상은 그런 최후로 가득 차 있다’ ‘감옥 그 너머의 감옥, 절벽 그 너머의 절벽, 최후 그 너머의 최후 / 산맥을 넘고 넘어도 산맥 / 산맥 그 너머의 산맥, 절벽 그 너머의 절벽, 최후 그 너머의 최후’

  이것은 끔찍한 풍경이다. 화자의 진술처럼 이런 세상은 ‘감옥’이다. 그런데 막판에 이것을 뒤집어 ‘희망의 연옥’이라니 이건 또 무슨?

  ‘간신히 희망’(시인의 말)이라더니, 이건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일까. (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