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과 반

 

 

백상웅

 

 

거기를 지날 때마다 나는 반반을 고민한다.

간판에는 장의사라고 반듯하게 박혀있고

미닫이문에는 영어로 드럼 레슨이라 적혀 있는,

거기는 낡았지만 웃기는 구석이 있다.

관을 짜는 사람과 드럼을 두드리는 사람이

한 건물에 다른 연장과 집기를 들여놓고는

하나가 염을 할 때 다른 하나는 스틱을 닦을

거기, 나는 그들의 반반이 궁금하다.

다달이 나눠서 내야 할 임대료 문제와

죽음과 음악을 다툼없이 공유하는 법을

그들은 한자리에서 해결하고 있을 테다.

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처음 시켜 먹었을 때의

느낌과 사뭇 다른 거기, 시체가 굳는 동안

로큰롤의 비트가 펄쩍 뛰는 이 무엄한 광경.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아는 자들이 아닐까.

책상 가운데에 그어진 금과 비슷한 그 경계.

여기까지가 하나의 가설이다. 거기 주인이

시체를 닦으며 드럼을 치는 사람이거나

장의사가 망한 자리에 드럼 치는 사람이

싼값에 들어온 것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 가설들도 진실과 거짓 사이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반과 반을 고민한다.

내 생의 반쪽과 사과 한 알의 반쪽,

적도의 위아래 그리고 건물주와 세입자,

내가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손쉬운 이분법도 거기를 지날 때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까지 거기의 문이 열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분명 이 동네에 거기는 존재하지만

드럼소리도 곡소리도 듣지 못했을 뿐이다.

 

- 백상웅 시집 『거인을 보았다』창비 2012

 

 

***

  처음엔 한참을 웃었습니다. 장의사와 음악교습소가 함께 있는 건물이라는 설정이 너무 웃겼습니다. 유심히 보지 않았을 뿐이지 제가 사는 이 도시 어디쯤에도 이런 설정의 건물이 한둘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저도 시인처럼 제 반과 반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와 우, 남과 북, 보수와 진보, 흑과 백, 죽음과 삶. 반과 반으로 나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나는 이 반과 반의 어느 쪽에 서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정말 저는 어느 쪽에 서 있을까요. 그 반과 반 사이의 경계, 그 가운데, 중립에 서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꽤나 있으시던데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착각이거나 착각을 가장한 위장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가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기도 합니다. 진정이라면 살아가는 모습에서 절로 그 반이 다 보일 테니까요.(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