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이성복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그는 한 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 몰랐다

(어두운 실내에서 문득 커텐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나무가 저를 구박하거나

제 곁의 다른 나무를 경멸하지 않듯이)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떨리며 속삭였다

— 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그것은 우리의 섣부른 짐작일 테지만

나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

 

- 이성복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

 

 

***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 

 모래 가르며 흐르는 

 기랑의 모습이로다, 수풀이여

 일오逸烏의 냇가 자갈벌에서 

 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 충담사忠談師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는 이성복 시집 『래여애반다라』의 마지막에 실려 있습니다.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로 시작해서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로 끝을 맺었는데 시작하는 시와 끝맺는 시의 제목을 보고 궁금해서 두 시를 먼저 읽었습니다.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의 어느 구절에서였을까요, 단박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겨울 몇몇 지인들과 찾아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뒤편 주차장에서 본, 새도 아니면서 철탑 송전탑 공중에 집을 짓고 머리에 고압전류를 이고 공중부양하고 있는, 정규직이면서 칼바람에 온 몸으로 맞서며 사내 하청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온전한 삶의 복원을 몸으로 절규하는………

  정말 어느 구절에서였을까요?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아니면, 비정규직의 늦은 밤 길 끝의 느티나무?  그도 아니면, 문득 커텐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 몰랐던?………

  처음 읽으면서 떠오른 이 사람은 시집을 읽는 내내,  생각나 다른 시를 읽다가도 읽고 또 읽어 수십 번을 더 읽는 동안에도, 시집을 덮은 뒤에도 꽤 오랜 시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를 끝끝내 기파랑을 찬하는 노래가 아닌 새도 아니면서 공중에 집을 짓고 새가 되어 절규하는 이 사람을 찬하는 노래로 읽고 말았습니다. 누군지는 다 아시겠지요. 최병승님. 그리하여 내가 읽은 노래는 '최병승을 기리는 노래', '찬최병승가歌'. 그리고 또 더 많은 '최병승들을 기리는 노래'.

  이것은 울산에서 돌아온 뒤 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 곳에 남아 맴도는 내 마음과 내 마음의 짐에게 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아아,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 ‘오다, 서럽더라’ (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