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사이

 

 

박덕규

 

 

연탄집게로 연탄을 집어든 어머니가

마당을 뛰어가신다.

연탄을 든 어머니의 한쪽 어깨가 올라가고

반대편 어깨가 낮아졌다.

어머니의 연탄 든 팔과 기운 몸 사이에 큰 틈이 생겨나 있다.

그 틈으로 바람이 예사롭게 지나다닌다.

 

지금 내 아내보다 더 젊은 어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연탄을 집어 들어 마당을 뛰어가신다.

어머니의 연탄 든 팔과 기운 몸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어머니가 입은 치마가 살랑거린다.

 

한번은 그 연탄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어머니 몸이 공중에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도 어머니는 공중을 뛰어가셨다.

꼬리치며 쳐다보던 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의 연탄 든 팔과 몸 사이가 크게 벌어져

그 틈으로 비행기가 지나가기도 했다.

 

아내는 어머니 흉내를 잘 낸다.

그래도 연탄을 집는 일은 없다.

연탄 힘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아내와 아내보다 젊은 어머니 사이에 틈을 그려 본다.

나는 그 틈으로 들어간다.

어느새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 있다.

 

(2013년 『시와정신』봄호)

 

***

세어 봐도 세어 봐도 모자라긴 여전하고 / 한낮에도 방구석에 쳐박힌 자식 보면 / 속이 상해 죽고 싶다 소리 죽여 넋두리를 / 뱉아내곤 돌아보며 히죽 웃는 어매야 / 그렇거나 말거나 불어오는 봄바람에 / 이 옷 저 옷 없는 옷을 있는 대로 꺼내놓고 / 앞을 보며 거울 한 번 뒤로 돌며 거울 한 번 / 괜찮니 어떠니 낄낄대는 어매야 (20대의 내 습작시 ‘시’ 중 ‘4. 바람’)

 

  엄마(어머니)를 노래하는 시들은 거의가 축축하거나 촉촉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시들에서는 칙칙하기까지 합니다. 젖어 있습니다. 축축하게 젖어있든 촉촉하게 젖어있든 젖어 있습니다. 혹 푹 젖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어느 한 귀퉁이는 언제 젖었는지 젖어 너덜너덜해져 있습니다. 40대 초반에 과부가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우리 엄마도 아마 때때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을 겁니다. 사는 게 바빠 축축하게까지 젖을 시간까지는 없었을지라도 아마 이따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우리 엄마가 만드는 칙칙한 분위기는 상상이 안됩니다. 우리 엄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그저 생기발랄했습니다. 봄 되면 봄을 타고, 외출할 때면(외출이라 해봐야 하숙생들과 가족들의 찬거리 사러 시장 나가는 거였지만) 30분 이상을 화장대 앞에서 얼굴을 정성스레 만지고, 부엌에서는 김추자의 ‘무인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늘 젊은 여자였으니 그 여자가 보여주는 세상이 생기발랄할 수밖에요. 이런 기억 속의 엄마를 앞에 두고 칙칙이야 당연하게 아니겠지만 촉촉하거나 축축한 시인들 어떻게 쓰겠습니까.

 

시를 열심히 쓰던 동기들은 모두 어머니가 아팠다. 암부터 관절염까지, 최근에 흰머리가 늘었다는 것도 쉽게 병으로 바뀌었다. 한 날 술자리에서 / 가장 아픈 엄마를 가진 동기가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우리는 은연중에 동의했다. 우리는 좋은 시를 쓰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의 불행을 부러워하면서, 읽고, 찢고, 마셨다. // (중략) / 녀석들은 모두 좋은 시를 썼다. / 엄마가 아팠으니까. // (중략) // 형식적으로 그들은 모두 엄마가 아팠다. 모두 시골 출생이었고, 흡연자였다. // (중략) 너무나도 증상이 같은 엄마와 너무나도 같은 병을 앓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 (중략) // (중략) // 그리고 등단자가 나타났다. / 우리의 모임이 해산되었다. // 시인은 덜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 담배를 끊었고, 그제야 우리의 아픈 엄마가 더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박성준 시 ‘대학 문학상’ 일부, 시집『몰아 쓴 일기』에서)

 

  시인이 그리는 엄마는 샤갈이나 미로,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델 같습니다. 샤갈의 우리 마을에 나오는 신부가 떠오릅니다. 부케가 아닌 연탄집게를 들긴 했지만 시인의 엄마는 샤갈의 신부만큼이나 예쁩니다. 또 불타는 연탄을 집은 연탄집게를 들고 공중을 뛰는 엄마는 불꽃 쇼를 벌이는 무술인들 같기도 합니다. 움직임이 날렵합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화면 구도는 너무나 잘 짜여진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나는 시인의 엄마의 공중 뛰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영화 쿵푸허슬의 코믹한 무술인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시인이 추억하는 젊은 엄마는 내가 추억하는 젊은 엄마입니다. 축축하지도 촉촉하지도 물론 칙칙하지도 않습니다. 발랄합니다. 명랑합니다. 불에 놀라 개처럼 공중으로 풀쩍 뛰어 올랐어도 구차하지 않습니다. 빵 터진 웃음이 땅에서 하늘로 강처럼 길을 내어 달려갑니다. 시인이 아내와 젊은 엄마의 틈 사이로 들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나도 함께 떠올라 젊은 엄마와의 추억여행을 떠났다가 그 틈 사이로 다시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