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라는 긴 털

용산, 천안함 그리고

                                                                

김중일

 

이것은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상형은 털 없이 매끄러운 피부에 가급적 눈물의 숱이 적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디쯤 잘라서 정리할까요?

여기쯤? 아님 여기?

 

시신의 일부같은 저녁의 서쪽 하늘 아래서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고 나면 온몸에 털이 무성해지는구나

흑백사진 속 인화된 작약 같은 음색으로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꿈속에 숨어서 혼자 많이 우나보다

 

깎아도 깎아도 끝이 없구나

 

누나는 턱밑까지 흘러내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자신의 얼굴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마당을 가득 채운 편서풍을 이용해 정리하곤 하였습니다

 

그 며칠 아버지와 형은 한 방울 그을린 눈물처럼

길에서 흔적없이 흩어졌습니다

걷다가 모르게 빠진 한 올 머리카락처럼

길의 질량과 부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온종일 공중은 빗줄기로 무성히 뒤덮여 있었습니다

온종일 공중은 온통 시커먼 털들로 무성하였습니다

무성한 야생의 털 속을 헤집으며 날고 여기저기 옮겨 앉으며

어머니와 누나가 동시에 멧새처럼 합창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친 악보 위에서 잠깐이지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빗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축축한 털로 무성한 넓은 가슴으로

공중이 우리 가족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우리는 털이 무성한 핏줄을 타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천생의 탯줄과도 같은 그것 말입니다

 

(김중일 시집 <아무튼씨 미안해요>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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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지 몇 달 되지 않은 듯한데 또 잊었습니다. 용산에 대한 기억도 아픔도 눈물도, 천안함에 대한 기억도 아픔도 눈물도 말입니다. 시인의 탄식마냥 용산에 대한 기억과 아픔과 눈물은 오로지 '어머니와 누나'의 몫으로만 돌리고, 저 역시 한 올의 머리카락이 빠진 듯 죽은 자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버렸나 봅니다. 울어도 울어도 어머니의 눈물은 줄어들기는커녕 자고나면 더 차오르고, 머리 다듬는 것마저 잊은 누나는 오늘도 거친 바람을 맞으며 버틴다네요. 출근길 버스칸에서 이 시를 읽다가 울컥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면서 괜히 얼굴을 찡그리고 또 찡그렸습니다. 얼마나 비참했으면 몽상의 시인마저 잠시 상상계를 벗어나 이런 현실계로 내려앉았을까요. 눈물을 탯줄로, 핏줄로 삼아 태어난 백성이 어디 따로 있나요. 어처구니없는 이런, 비참한 눈물이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 세상에 대한 꿈은 정녕 꿈일 뿐일까요. 억울하게 죽은 모든 영혼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하루입니다. (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