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드

 

  백무산

 

  스포츠뉴스에 잠깐 스쳐 지나간 그 심판을 똑똑히 기억할 순 없지만 그가 게임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을 보았다

 

  열광하던 관중 가운데 존 레넌을 닮은 한 사내가 자지를 내놓고 축구장을 가로질렀다 경기는 플러그 뽑히듯 중단되고

 

  보다 못한 선수 한 명이 달려가 온몸으로 태클을 걸어 그 벌거숭이를 자빠뜨렸을 때 난장판이 된 경기장은 정리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심판의 판단은 달랐다

 

  심판은 태클을 건 선수에게 달려가 주저없이 레드카드를 내밀고 퇴장시켜버렸다

 

  골을 얻어맞은 선수가 항의하자 심판은 손가락을 잔뜩 발기시키고 똑똑히 말했다 "당신은 관중을 모독했어!"

 

  심판은 경기의 규칙이 아니라 경기장의 규칙을 지킨 것이다 경기장의 규칙은 관중이 구매한 것이다 조기회 축구가 아니라면 관중 없이는 경기도 없다 선수가 관중에게 태클을 거는 행위는 경기장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경기 중단도 경기의 일부다 관중의 일탈도 야유도 경기장의 일부다 태클은 경기의 기술일 뿐이다 선수가 경기장에 태클을 거는 행위는 관중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 분명하다

 

  시민들이 분노하여 광장에 뛰어들었다고 공권력이 태클을 거는 것은 사회라는 운동장의 규칙을 무시하는 처사다 누군가 공권력에 레드카드를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존 레넌처럼 생긴 남자는 벌거벗은 광대이며 이성적 광기의 유령같은 존재이다

 

  스포츠뉴스에 잠깐 비친 그 심판이 누구인지 모르나 나는 나의 시가 레드카드가 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 백무산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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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의 규칙에 더하여 경기의 규칙까지 깡그리 무시한 행위가 셀 수 없이 일어나고, 지키지 않는 규칙을 지키라고 하는 관중을 향하여 적반하장, 선수가 되려 더 태클을 걸고 심판까지도 선수를 감싸고 관중을 향하여 레드카드를 내미는 현실 앞에서 '나는 나의 시가 레드카드가 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가슴을 칩니다. 욕망과 거짓희망에 휘둘려 아름다운 경기장을 관중이 모독을 당하는 경기장으로 만드는 일, 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