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

 

 

주병율

 

 

지난겨울에도 나는 바다의 숭어를 사랑하고

눈이 멀었네

어두워지는 포구의 뱃전에 앉거나 기대어서 귀기울여 보지만

삼남 천지에 네가 왔다간 소리는 듣지 못했네

먼 바다를 건너와 하루 종일 내리던 눈보라 속

아직도 젖은 하늘에 길이 있다면

지워버리고 지워버리고 싶은 은종이 같은 비늘 하나

이제 어디로 가랴고 내게 다그쳐 부는 바람만 곁에 있어서

지난겨울에도 여전히 나는 바다의 숭어를 사랑하고

눈이 멀었네

 

 

(2012년 <리토피아> 겨울)

 

 

  ***

  첫 눈 내리던 날 당신은 길거리로 나선 적이 있었지요. 내리는 듯 마는 듯 어설프게 날리는 눈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종일 길거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지요. 첫 눈 내리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믿고 나선 거리였지만 기다려도 만나자는 약속을 했던 그 누군가는 오지 않고 찬바람만 맞으며 허무하게 시간을 눈발과 함께 날려버린 적이 있었지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은 그 누군가와 언제 그런 약속이라는 걸 한 적이 있긴 있었든가 의심하다가 돌아선 적이 있었지요.

  밤마다 당신은 어느 골목을 서성이던 적이 있었지요. 그 골목은 그 누군가와 함께 할 때만 존재하는 골목이었는데 그 때는 이미 함께 하던 그 누군가는 사라진 골목이어서 당신에게는 벌써 없는 골목이었음에도 당신은 그 골목을 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골목의 이 끝에서 저 끝,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밤새워 돌던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돌기를 멈추자 그 골목은 당신의 그림자를 꼭 잡고 따라왔고 당신은 모르는 척 또 오랫동안 그 골목 그림자를 내치지 않고 그 그림자와 함께 산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그 첫 눈 내리던 날 서 있었던 길거리를 떠났지요. 그리고 이미 사라진 없는 골목도 떠났지요. 물론 그 골목의 그림자도 내쳤지요. 그리고 잊었지요. 그 약속도 그 골목도 그 골목의 그림자도 다 잊었지요. 당연히 다 잊었지요. 왜냐고요? 그로부터 세월은 수 십 년이 흐르고 당신은 수 만 리의 길을 걸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뜬금없이 드는 의문 하나. 당신, 정말 잊기는 잊은 건가요.

  미래의 또 다른 어느 날 첫 눈은 아니지만 눈발이 날리고 눈발 날리는 길거리에서 당신은 문득 오래 전의 그 약속을 떠올리는 건 아닌지요. 하여 마주 보이는 길거리에서 여전히 눈발을 맞으며 서 있는 당신을 보는 건 아닌지요. 없는 골목의 이 끝에서 저 끝,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돌고 또 도는 당신마저 보는 건 아닌지요. 아니, 아니지요. 어쩜 당신은 벌써 오랫동안 안 보는 듯 그 길과 골목을, 그 길에 서 있는 당신과 그 골목을 도는 당신마저 계속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요. 모르는 척 모르는 척 하면서요. 지난겨울에도 여전히 바다의 숭어를 사랑하고 눈이 먼 어떤 시인처럼요. (남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