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千이랑 萬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김영랑 전집『모란이 피기까지는』(미래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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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강진 출신의 시인 영랑 김윤식. 그는 1930년대 정지용, 박용철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줬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강물이 흐르네/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은결을 돋우네”(「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내 마음 아실 이」),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영랑의 시에는 물 흐르듯 영롱한 언어가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5월에 나는 영랑의 시「오월」을 다시 읽는다. 연두가 봄볕을 받아먹고 초록으로 건너가는 오월의 여러 풍경이 이 짧은 시에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먼저 시의 도입부에서 붉은 황톳길의 마을 골목길과 푸른 들길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풍경의 문을 연다. 그리고 넘실대는 바람과 그 바람 따라 이랑 이랑 갈라지는 햇빛을 펼쳐놓고 또 쫓고 쫓기는 꾀꼬리의 사랑을 그려놓고 있다.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라는 데서 보듯 여성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로 의인화시킨 보리를 등장시켜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사랑이 샘솟는 오월의 풍경을 더욱 토실하게 한다. 그러나 시의 압권은 마지막 두 행에 있음이다. 신록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또 거기에 아양으로 가득 차 있는 오월의 산봉우리가 오늘밤 바람이 나 어디로 가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데서 김영랑 시인의 심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끝없이 흐르는 마음의 강물을 곱고 맑은 언어로 잘도 퍼내던 시인을 앗아 가버린 한국전쟁이 못내 원망스럽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