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간다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허수경 시집『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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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둘째 시집『혼자 가는 먼집』은 사랑의 단절로 생겨난 마음의 폐허에서 격정적으로 솟아나는 울음과 탄식의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표제 시「혼자 가는 먼 집」에서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의 그리운 당신을 “킥킥 당신”이라 명명한 역설적 표현을 비롯하여 “더는 취하지 않아/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날 묶어”(「不醉不歸」), “내 상처의 실개천엔/세월도 물에 빠져나오지 않고”(「상처의 실개천엔 저녁해가 빠지고」),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정든 병」),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서늘한 점심상」) 등의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노래는 사랑의 단절로 상처나고 병든 몸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슬픈 노래들이다. 기형도의 한 시를 연상케 하는, “사카린같이 스며들던 상처야”로 시작하는 시「봄날은 간다」와 시집 앞뒤로 편재된「기차는 간다」도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 앞에 남자의 성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밤꽃과 기차는 지고 지나가고 없다. 6행의 이 짧은 시에 ‘지다’와 ‘가다’라는 동사가 범벅이 되어 있다. 대조와 단정적인 시구인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에서 보듯 이는 당신이 떠나가는 데 대한 시적 화자의 통곡과 탄식의 절규다. 시집『혼자 가는 먼 집』이 나온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다. 지금 허수경 시인은 만리 타국 독일로 유학하여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새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이제는 그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인한 마음의 집착(執着)을 다 내려놓을까?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