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香)

 

-황동규

 

 

 

비 긋자 아이들이 공 차며 싱그럽게 자라는

원구 초등교 자리, 가톨릭 대구 교구 영해 수련장

현관 앞에 서 있는 향나무

선들바람 속에 짙은 초록으로 불타고 있다.

나무들 가운데 불의 형상으로 살고 있는 게 바로 향나무지.

중얼대며 자세히 살펴보면

몇 년 전 출토된 백제 금동 향로 모습이 타고 있다.

선들바람 속에 타고 있다.

혹시 금동장(金銅匠)이 새로 앉힐 향로의 틀을 찾다

향의 속내를 더듬다

저도 몰래 향나무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금 밖으로 흘리는 공을 되차주기도 하며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나무 앞에 선다.

아이 둘이 부딪쳐 나뒹굴어졌다 툭툭 털며 일어난다.

이 살아 불타고 있는 향로 앞에서

이 세상에 태울 향 아닌 게 무엇이 있나?

속으로 가만히 물어본다.

 

 

-황동규 시집『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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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향(香)이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고급 향수도 향을 피운 냄새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그럴까? 황동규 시인의「향(香)」이라는 시도 무척 좋다. 나는 황동규 시인이 그동안 펴낸 열네 권의 시집 가운데 열셋 째 시집『꽃의 고요』를 제일 많이 읽었다. 시집 표지가 나달나달해졌다. 시집 속에는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예수와 부처 그리고 원효가 서로 만나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그 대화는 모두 이 세상 삶의 이치와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비의 눈길로 보듬고 있는 내용들이다. 나는 향나무의 이파리가 불(불꽃)의 형상이라는 걸 이 시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렇다. 가지마다 촘촘히 이파리를 모아서 하늘로 향하고 있는 게 꼭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 그대로다. 시인은 향나무를 보면서 “백제 금동 향로 모습이 타고 있”는 것으로 느끼고, 그 금동 향로를 만든 장인(匠人)이 “새로 앉힐 향로의 틀을 찾다/향의 속내를 더듬다/저도 몰래 향나무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싱그럽게 자라는” 아이들을 두고 “살아 불타고 있는 향로”라고 보는 시인의 깊은 눈이다. 시의 종결부에 “이 세상에 태울 향 아닌 게 무엇이 있나?”라는 설의적 표현이 의미하는 바, 세상의 사람과 사물이 모두 향(香)이다. 우리 모두 이승에 갖고 온 제 고유의 향(香)을 한 평생 올곧게 피우다 갈이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