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에 관한 추억

 

-서정춘

 

 

 

아버지는 새 봄맞이 남새밭에 똥 찌글고 있고

 

어머니는 어덕배기 구덩이에 호박씨 놓고 있고

 

땋머리 정순이는 떽끼칼로 떽끼칼로 나물 캐고 있고

 

할머니는 복구를 불러서 손자 놈 똥이나 핥아 먹이고

 

나는 나는 나는

 

몽당손이 몽당손이 아재비를 따라

 

백석 시집 얻어보러 고개를 넘고

 

 

 

-서정춘 시집『봄, 파르티잔』(시와시학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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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고향 평북 정주의 10년 후배 시인 백석. 그가 우리 현대시에 끼친 영향은 소월의 그것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다. 백석은 일제강점기 때 해체되어가던 농촌공동체의 민속 문화를 그만의 독특한 어법과 평안도 사투리로 훌륭하게 복원시켜내고, 식민지 민중적 삶의 애환을 여실히 담은 수작(秀作)을 여럿 남겨놓았다. 그리고 그가 남겨놓은 이러한 작품들은 여러 후배 시인들의 시 창작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신경림, 서정춘, 이시영 같은 시인들은 자신들의 시작(詩作)에 백석의 시가 결정적이었음을 공공연하게 말한다. 안도현 시인은 아예 둘째 시집 제목을 백석의 대표작 ‘모닥불’로, 넷째 시집 제목을 백석의「흰 바람벽이 있어」의 한 구절인 ‘외롭고 높고 쓸쓸한’으로 차용하고 있다. 또 최근에 나온 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의 2부는 백석의 시가 그랬던 것처럼 유년시절의 놀이와 음식에 관련된 서정시를 담고 있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 시의 내용면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다면, 셋째 시집『가재미』를 펴낸 문태준은 시적 표현의 어법 측면에서 백석의 직접적 영향을 떠안고 있음이다. 전남 순천 출신인 서정춘 시인의「백석에 관한 추억」도 문학소년 시절 우연히 백석의 시집을 얻어 보게 된 경험을 노래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정순이, 할머니, 나’로 이어지는 인물의 나열과 각 시행의 종결부의 ‘-고’의 반복적 병치 또 진한 전라도 사투리의 사용이 서정춘 시인의 어린 시절 고향의 정서는 물론 백석 시의 맛까지 솟아나게 한다. 백석은 아직도 우리 시대 현역 시인들의 시 속에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