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잠자리


-조태일



몇날 몇 달

몇백 리 몇천 리의 허공을 날고 날았을까.

텅 빈 폐가의 늘어진 빨랫줄에

잠자리 한 쌍

앉아서 쉬고 있다.


투명한 그물맥의 날개를

이따금 이따금 떨면서

작은 더듬이로

이 세월을 더듬거린다.

그 큰 곁눈으로 할깃할깃,

익어가는 삼라만상을 담는다.


몇날 몇 달

몇백 리 몇천 리의 허공을 뚫고 날아서

저승으로 가려는가

세 쌍의 다리로 힘껏

이승을 박차고

자물자물 하늘로 날아간다

황금빛을 반짝이며.


-『조태일 전집-시․2』(창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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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저께가 조태일 시인이 돌아가신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조태일 전집』(전4권)이 창비에서 나왔다. 지난 어두운 시대에 그가 대응한 문학(시와 평론)의 빛깔은 불꽃같이 거침없는 언어와 섬세하고도 결 고운 들꽃의 언어였다. 바람 좋은 가을 날, 그가 남겨놓은 시집 속에서「가을 잠자리」를 다시 읽는 젊은 시인의 마음이 서늘하다. 텅 빈 폐가의 빨랫줄에 앉아 쉬고 있는 잠자리 한 쌍을 통해 생명(生命)의 본 모습을 그려내는 위 시의 내용은 참으로 무겁다. 익어가는 가을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담는 잠자리의 눈빛을 “할깃할깃”으로, 또 이승을 박차고 저쪽 하늘로 날아가는 잠자리의 모습을 “자물자물”로 표현한 의태첩어의 운용이 돋보인다. 생명(生命)이 나오고 들어가는 그 거리를 알지 못해 나는 아직도 세상을 더듬거리고 있다. “이승을 박차고/자물자물 하늘로 날아간” 그가 다시 그립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