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못하리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한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무늬의 숨결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 뜨면 여늬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송재학 시집『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민음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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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학의 셋째 시집『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에서 표제시인 이 시를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는다. 그렇게 소리 내어 거듭 읽다보면 나는 어떤 환상적이고 아늑한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환각이 일어난다. 이 공간은 그가 내 얼굴을 만지자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와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놓은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숲이다. 한 쪽마저 봉인된 절대의 공간, 여기서 그대와 나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나는 이 시를 읽어가다 한국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던 ‘중독’ ‘지독한 사랑’이라는 말들을 떠올렸다. 시의 내용은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연애(戀愛)가 틀림없지만, 그 연애의 향방은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통상적인 남녀(男女)의 사랑으로 읽든, 내 삶의 뿌리인 혈연(血縁)과의 깊은 사랑의 대화로 읽든 그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면 누구나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러나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시인마다 다르다. 송재학 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시를 나는 오래 읽었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