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호




십수년 찌든 벽을 도배하려고

액자를 떼어냈다

아하, 외줄로 뻗쳐있는 까만 길

우주에서 내려다본 만리장성 같다

담배씨같이 자잘한 개미들이

큰짐승 눈을 피해 숨죽이고 나래비 서서 다닌

고 작은 발자국들 세발세발 쌓인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는 차마고도

님 마중하는 꿈길마다 바윗돌 부서져 모래가 되었다는

옛 노래처럼 작은 빨빨거림이 몽쳐

우주를 꿰뚫은

노래



-동인지『푸른시 11호』(심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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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에서 열정적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함께하는 시동인 ‘푸른시’의 동인지가 나왔다. 벌써 11호 째다. 포항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11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발간된 품격 있는 동인지『푸른시』, 그간 동인 활동의 노력과 그 결실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번 동인지에 수록된 64편의 푸른시 동인들의 작품들 가운데 차영호 시인의 신작「길」에 내 눈길은 오래 머물렀다. “십수년 찌든 벽을 도배하려고/액자를 떼어”내다 만난 “담배씨같이 자잘한 개미들”의 “까만 길”을 두고 “우주에서 내려다본 만리장성”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히말라야를 넘는 차마고도”로 읽어내는 시인의 눈길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또 사람을 두고 ‘큰짐승’이라고 명명한 것이나 일렬로 나란히 걸어가는 모양을 뜻하는 ‘나래비’라는 시어의 사용도 그러하다. 더욱 인상적인 구절은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개미들의 “고 작은 발자국들”의 “빨빨거림이 몽쳐” 새겨진 벽 위의 ‘까만 길’을 두고 “우주를 꿰뚫은/노래”한 것은 가히 폭발적인 상상력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영호 시인은 벽 위로 개미가 걸어간 흔적으로 남은 까만 줄 하나에다 자기 내면의 음률을 실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리라. 사물의 미세한 기척 하나에도 우주의 가락을 얹어서 노래하는 사람, 그가 바로 시인이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