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6호...
   2020년 02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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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2 카타콤베 / 김사이
김재순
4120 2010-11-28
카타콤베 김사이 막차를 타려고 뛰어가는데 지하도 큼직한 기둥들 사이로 웅크린 돌덩어리들 아니, 인기척을 내는 소름이 확 끼치는 거대한 짐승들 있다 순간 가슴 벌렁벌렁거리게 하는 이 고요 카타콤베 내 웃음의 이면이다 노동자도 수입하는 갖출 것 다 갖춘 불빛의 지하 지하의 지하 지하도 없는 지하 살아 있음을 한 끼니로 간청하다가 절망도 없이 잠을 청하는 이 곳을 지날 땐 순례자의 마음으로 하라 뼈다구만 남은 이상주의자들도 죄를 고백하며 걸어야 하는 카타콤베 내 등줄기에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혹처럼 자란다 나를 구역질한다. 김사이 시인은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사람의 무리를 보고 로마 초기의 지하묘지 카타콤베를 봅니다. 이들은 무엇을 피해 이곳에 몰려들었을까요 우리는 정말로 강줄기에도 유람선을 띄우고 희희낙락해도 되는지요. 김사이 시인은 자신을 반성하며 구역질을 합니다. 그런 사람 몇일까요 -김재순-  
101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이해리
임술랑
3778 2010-11-26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이해리 제 떠나 왔던 도래지로 날아가려는 겨울철새는 맹목적이다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나도 피하지 않는다 한마리 꼬까도요새가 비행기와 충돌했다 새의 몸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는 허둥 지둥 회항한다 조그만 새의 의지를 거대한 비행기가 꺽지 못하는 이유, 무어라 설명할까 조류 학자들은 인상 받기라 명명했지만 차가운 동체에 묻힌 한 점 혈흔의 가엾음으로 나는 그 맹목이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라 유추해 본다 총을 쏘고 경음기 폭음기 다 동원해도 청, 청, 청 푸른 하늘 들이 받으며 날아 오르는새, 그렇지 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 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들리고 안 보이는것, 안 보여서 그리운 사무침을 믿어 끝까지 행하는 것 지구의 반 바퀴나되는 비행거리를 찬날개 두 쪽과 가슴 오므려 붙인 가느다란 두 발이 전부인 行裝으로 날아가도 서럽지 않은것 그 망망한 외로움을 위해 한 목숨 분쇄되는 장애물도 두려워 않는것, 펄럭 펄럭 붉은 석양이 적시는 흰 가슴 날개로 제몸 매질하며 구만리 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 가는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 ............................................................................................................................................................... (감상)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가는 철새! 사람도 그리움에 미치면 로켓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달나라까지라도~.(임술랑)  
100 화살나무 / 손택수 image
이종암
5112 2010-11-23
화살나무 -손택수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동심원, 나이테를 품고 산다 가장 먼 목표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으니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하는, 시윗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산길 위에서 -손택수 시집『호랑이 발자국』(창비,2003) ------------------------------------------------------------------------------------------------------------------------ 그대는 화살나무를 아는가? 우리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박덩굴과의 나무로 잔 가지에 2-4개의 날개가 달려 있어 그 모양이 화살 같아서 이름 붙여진 화살나무. 이 화살나무를 가지고 손택수 시인이 짧은 그러나 매운 서정시 한 편을 썼다. 그 시를 읽으니 서정의 불화살이 내게로 날아오는 것만 같다. 이 시는 짧은 시이지만 그 짜임새가 아주 빼어나다. 1연의 내용이 화살나무의 모양새를 세밀하게 그려나간 묘사로 되어있다면 2연의 내용은 1연의 묘사로 뒷받침된 삶의 진실을 드러낸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묘사와 진술은 서로를 짝으로 하고 있어 각각 그 빛을 더욱 발하고 있다. 손택수는 우리네 삶은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멀어지는” 목표물(과녁)을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는 진리를 화살나무를 빌려 간명하게 묘파하고 있다. 그런데 3연의 시적 표현이 재미있다. 실로 거대한 묘사다. 작은 화살나무 가지에 대한 묘사와 진술로 시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거대한 산에 걸쳐져 있는 산길이 활의 시윗줄로 턱하니 앉혀놓고 있다. 그렇다. 1연과 2연의 시적 내용이 서정을 물고 있는 화살이라면, 3연의 내용은 그 서정의 화살을 날려줄 팽팽하게 당겨진 활줄 노릇을 하고 있다. 시가 참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이종암(시인)  
99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 / 공광규 [2]
김재순
4321 2010-11-19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 공광규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 문화일보 1996년 10월21일자 32면에 ‘고객과 함께 하는 세계로 미래로 - 삼성’ 이 전면 이미지 광고를 냈다 흰머리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간 막대를 안고 세상을 슬프게 응시하고 있다 영풍문고판 「TOEIC 超학습법」 48쪽에 실린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탱탱한 몸매로 번 재산을 기아의 아가리에 털어넣고서야 천사가 되다니 피부가 헌 가죽부대처럼 쭈글쭈글해져서야 아름다워지다니 평생을 거쳐 아무도 아무것도 제대로 사랑해보지 않은 나는 언제 나에게서 해탈하여 이 할머니처럼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화무십일홍인가요? 꽃이 피는 건 어려워도 지는 건 쉬운가요? 위의 시가 그 대답을 합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내가 빨려든 것은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헵번이었습니다. 그 매혹적이던 모습이 헌 가죽부대처럼 쭈글쭈글해져서야 정말로 아름다워졌고 이제는 다 흩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쿵쿵거리게 합니다. 헵번 여사의 사랑을 사랑하는 공광규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번져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아름다움의 강조점을 어디에 찍을까 망설입니다. -김재순-  
98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image
이종암
4952 2010-11-15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못하리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한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무늬의 숨결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 뜨면 여늬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송재학 시집『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민음사,1997) ------------------------------------------------------------------------------------------- 송재학의 셋째 시집『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에서 표제시인 이 시를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는다. 그렇게 소리 내어 거듭 읽다보면 나는 어떤 환상적이고 아늑한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환각이 일어난다. 이 공간은 그가 내 얼굴을 만지자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와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놓은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숲이다. 한 쪽마저 봉인된 절대의 공간, 여기서 그대와 나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나는 이 시를 읽어가다 한국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던 ‘중독’ ‘지독한 사랑’이라는 말들을 떠올렸다. 시의 내용은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연애(戀愛)가 틀림없지만, 그 연애의 향방은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통상적인 남녀(男女)의 사랑으로 읽든, 내 삶의 뿌리인 혈연(血縁)과의 깊은 사랑의 대화로 읽든 그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면 누구나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러나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시인마다 다르다. 송재학 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시를 나는 오래 읽었다. -이종암(시인)  
97 안개꽃 / 송기원
김재순
4113 2010-11-11
안개꽃 송기원 이제 알겠지 발아래 뿌리기 시작한 새벽안개가 네 비틀거리는 길을 지워버릴 때 주정뱅이로 객사한 아비와 술집 작부로 평생을 떠돈 어미가 네 지나친 길 위에 다시 살아올 때, 이제 비로소 알겠지 간밤에 네 속살 깊은 곳을 비집고 들던 한 사내의 살기와 굶주림이 뜬금없는 새벽안개로 피어올라 네 늦은 귀가를 막아서는 이유를 맺힌 게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밀착시켜 그들의 마음을 뭉텅이로 끌어내는 송기원 시인, 그래서 한 때 그에게 말려들었습니다. 새벽까지 흥청거리다가 문득 ,신산한 삶을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면 삶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삶이 앞을 막아서는 새벽안개 같은 것이라면 그 속에서 헤어나려는 몸짓의 기록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록상의 표현이 서툰 것 뿐 몸짓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재순-  
96 웃은 죄/김동환
임술랑
4349 2010-11-08
웃은 죄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감상) '자의와 타의' 이 시에는 자의가 없다. 타의에 의한 응대를 했을 뿐이요, 적의 없이 웃은 것 밖에 없다.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는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웃은 죄"밖에 없으므로, 웃은 것도 죄가 되나? 하고 반문하는 것도 같다. 당신이 지름길로 가서 어떤 급한 볼 일을 보지 않고 이 근처에서 머뭇거려도 나는 책임이 없다는 것, 한편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손 잡길래 그냥 뒀어요. 손이 따습데요." 하면서 "나는 모르오. 이게 죄가 되는지?" 아리송한 禪詩 같다.(임술랑)  
95 가을산 / 박진성
김재순
4247 2010-11-05
가을산 박진성 산의 이름은 적상(赤裳) 붉은 치마가 은유라면 그 속에 내 사랑하는 여자가 산다네 구중심처에서 울울창창 나무들을 거느리는 내 사랑하는 여자가 산다네 고봉준령을 다 품은 적요로움으로 있는 내 여자여 나 다시 태어나면 네 치마 속 고로쇠로 서 있으리 바람 탓이라고, 몸으로 농짓거리 하면서, 내 손바닥으로 슬쩍 네 하초를 더듬고 싶다 내 직립의 일생이 순전히 내 여자를 향한 발기이고 싶다 빳빳한 내 상상을 풍경으로 바꾸느라 온몸이 치마가 되었네 저도 그리 싫지는 않아서 붉게 물들었네 나 다시 태어나면 적상산 고로쇠로 서 있으리 病이 깊어 적상을 찾은 이에게 수액을 다 내주어도 좋겠네 만추입니다. 초록이 지쳐,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릅니다. 갈증으로 남아 있는 지나간 여름에 다 못한 말들을 마지막 불꽃 속에 던집니다. 그리고 그 불꽃 앞에서 다시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병이 깊어 찾아오는 사람에게 수액을 다 내주어도 좋겠다는 젊은 시인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았습니다. 오래된 내가 이제사.. -김재순-  
94 석류 / 조운 image
이종암
4047 2010-11-04
石榴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조운 기념사업회『조운 시조집』(작가,2000) ------------------------------------------------------------------------------------------------ 1900년 전남 영광 출신의 시조 시인 조운. 일제강점기에 항일민족주의자였던 그가 50세가 되던 1949년에 돌연 가족과 월북하면서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 시인 조운의 이름은 말끔히 지워졌다. 그러나 1947년 조선사에 간행된『조운 시조집』이 분단 50년이 지나서였지만 재간행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름이 유폐된 것을 안타까워하던 조운기념사업회가 주도하여 펴낸『조운 시조집』(작가,2000)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 인해 조운의 빼어난 시조 작품이 일반 독자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조운은 주로 단형 시조에서 그 빼어난 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의 단시조「古梅」가 이른 봄의 풍경을,「상치쌈」이 여름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라면, 위 시조「석류」는 가을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음이다. 석류를 의인화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가을의 한 풍경을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화자의 정서를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초장(1연)이 석류의 외양을 단순히 묘사하면서 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중장(2연)은 붉은 석류와 그 속 알알이 맺혀있는 석류 열매를 펼쳐놓음으로써 그 그림의 색칠을 완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완의 그림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있어야 한다. 시적 화자의 간절한 서정(임에 대한 붉은 그리움)을 폭발적으로 그려놓고 있는 종장(3연)이 바로 그것이다. “보소라 임아 보소라/빠개 젖힌/이 가슴.”의 반복과 도치법으로 표현된 종장이 보여주는 시적 미학은 가히 탁월하다. -이종암(시인)  
93 갈대는 배후가 없다 / 임영조
윤임수
4134 2010-11-03
갈대는 배후가 없다 / 임영조 청량한 가을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의 속된 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 들어 禪門에 들듯 젖은 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老後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댄 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 反骨의 同志가 있을 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 그리하여 이 가을 볕으로 바람으로 피를 말린다 몸을 말린다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해. *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에 대하여 잘 안다. 속을 비우면 존재조차도 홀가분하게 버릴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아직 그리하지 못한다. 그리할 수 없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고 좀 더 오래 그 길을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그러나,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저 꼿꼿한 老後”의 갈대는 절대로 기억에서 지우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되었을 때,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하여! (윤임수)  
92 오두막 집 / 이문구 image
이종암
4267 2010-11-02
오두막 집 -이문구 두 노인만 사시는 오두막집 밤 깊어 도란도란 누가 왔을까. 들리다 말다 무슨 얘길까. 별밖에 없는 외딴 마을에 잠 안 오는 두 노인 하고 또 하는 소리. -이문구 동시집『이상한 아빠1』(솔출판사,1997) ------------------------------------------------------------------------------------------------------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난 농촌과 도시 변두리의 고달픈 서민들의 삶을 독특한 충청도 사투리와 구어체의 긴 문장으로 리얼하게 그려낸 작가 이문구. 명천(鳴川) 이문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이문구 선생은『관촌수필』,『우리동네』『매월당 김시습』같은 소설집을 펴내면서 한 편으로 동시집도 여러 권 펴냈다. 오래 전『개구쟁이 산복이』(창작과비평사,1988)라는 동시집, 그리고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이상한 아빠1,2』(솔출판사,1997)를 펴내기도 했다. 위의 동시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집에 내놓아도 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길이가 짧고 내용은 단순해 보이지만 위 시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하루하루의 도시 생활에 얽매인 성인들에게 고향집을 홀로 지키고 계시는 노모를 생각나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도록 적시게 하는 어떤 시보다도 감동의 진폭이 큰 작품이다. "쉽고 소박하고 깨끗한 마음의 동시는 난해한 말과 지나치게 지적인 사상으로써 이루어진 성인의 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지적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잠 안 오는 두 노인/하고 또 하는 소리.”가 그립다. 오래 전, 고향집 뒷산으로 걸어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종암(시인)  
91 강덕기 여사 / 함순례
윤임수
4059 2010-10-29
강덕기 여사 좁은 부엌에서 느릿느릿 국수를 삶는다 생선 몇 토막 손질하고 콩나물 씻으면서도 덜그럭 소리도 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마루방 벽면에 걸린 자잘한 사진들이 파랑의 세월을 풀어내고 있다 거센 파도를 낚고 있는 사내 뜨거운 젖 한 입 가득 문 돌배기 파리똥 앉은 액자에 눌려 있다 살붙이는 다 어디로 떠났을까 구룡포 시장 바닥에서 사십해, 국수 삶을 때마다 답답한 속 풀듯 생선과 콩나물 섞어 뭉친 국수 가닥가닥 흔들었으리라 이제는 손님 들까 말까한 식당문에 기대어 저물어가는 포구나 하염없이 바라보는 팔자지만 감척어선 풀어놓고 출렁이는 눈매, 아직 고웁다 * 기본적으로 시인의 시선은 따뜻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따뜻한 시선이 삶의 뒷골목에 온기를 더해 준다. 시인의 따뜻한 눈매가 있어 강덕기 여사의 저물어가는 삶도 아직 고웁다. 싸늘한 가을날, 삶을 진하게 우려낸 강덕기 여사의 모리국수 한 사발을 후루룩, 후루룩, 먹었으면 좋겠다. (윤임수)  
90 두만강 푸른 물 / 이대흠
김재순
4381 2010-10-29
두만강 푸른 물 이대흠 파고다 공원에 갔지 비오는 일요일 오후 늙은 섹스폰 연주자가 온 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내고 있었어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 그 푸른 물속에 섞이고 있었지 두 손을 꼭 쥐고 나는 푸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섹스폰의 주둥이 그 깊은 샘을 바라 보았지 백두산 천지처럼 움푹 패인 섹스폰 속에서 하늘 한자락 잘게 부수며 맑은 물이 흘러 나오고 아아 두만강 푸른 물에 님 싣고 떠난 그 배는 아직도 오지 않아 아직도 먼 두만강 축축한 그 섹스폰 소리에 나는 취해 늙은 연주자를 보고 있었네 은행나무 잎새들이 노오랗게 하늘을 물들이고 가을비는 천천히 늙은 몸을 적시고 있었지 비는 그의 눈을 적시며 눈물처럼 아롱졌어 섹스폰 소리 하염없을 듯 출렁이며 그 늙은 사내 오래도록 섹스폰을 불고 있었어 가을비에 몸을 적시며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내는 늙은 색소폰 연주자의 기다림은 수십년이 되었겠지요 저도 그 옆에서 가을비에 눈을 적시며 님 싣고 떠난 배를 기다립니다. 늙은 연주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내 눈가에 잔주름이 굵어지기 전에 다시 꼭 돌아오리라 믿으며... -김재순-  
89 이제 오느냐 / 문태준 image
이종암
6266 2010-10-26
이제 오느냐 -문태준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 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 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문태준 시집『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2008) ---------------------------------------------------------------------------------------------------------------- 문태준 시인은 말한다. 매화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오는 것’이다, 라고. 그래서 집 안 화분에 매화꽃이 오늘 걸 밤새 조마조마해 하면서 시인이 문득 내놓은 말이 “이제 오느냐,”이다. 원래 “이제 오느냐,”라는 말은 시인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말이다. 그가 어렸을 적 아버지한테 수도 없이 들었던 “이제 오느냐,”라는 말을 지금 매화꽃에게도, 아비가 되어 자신의 아들에게도 똑 같이 내어놓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오느냐, 라는 이 말이 얼마나 뜨겁고 깊은 말인지 깨닫는다. 그래서 이것은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이라고 한다. 아버지한테 듣고 배운 말 한 마디로 이렇게 뜨겁고도 깊은 서정시를 써내는 문태준 시인의 장인적 솜씨가 놀랍다. 짧은 이 시의 얼개도 촘촘하고 튼실하게 잘 짜여져 있다. 이제 오느냐, 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사용된 1연과 그 말의 의미를 나타낸 2연, 마지막으로 그 말의 기원을 밝히고 있는 3연의 유기적 결합이 서정의 물살을 세차게 뿜어내고 있다. 시를 몇 번 거듭해서 읽자니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굵고 깊은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아, 아부지! -이종암(시인)  
88 세월이 가면/송경동 [1]
평강이발소
5677 2010-10-24
세월이 가면/ 송경동 어려서는 왜 그렇게 서울로 가고 싶었을까 서울이 그리울 때면 빈 철도 운동장을 스무 바퀴도 넘게 돌다 쓰러져 밤하늘을 보거나 밤이슬에 젖은 순천만 갈대숲에 나가 스산한 갈매기떼를 보곤 했는데 텅 비어 있는 퇴근 후 공단거리 철망 사이 기웃거리며 웅웅거리는 터번 소리를 듣거나 가리봉동 닭장집 골목 서성이다가 돼지껍데기 집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 잔술에 어리는 눈물을 본다 인생은 어디로 떠나거나 오래 걷는다고 어딘가에 닿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삼보일배, 항의 방문, 삭발 투쟁, 단식 농성, 천막 농성… 안해 본 투쟁이 없지요.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외치며 싸운 지 벌써 6년입니다. 지하철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에 위치한 기륭전자 옛 사옥에 가보세요. 서울로, 서울로 가고 싶어서 ‘빈 철도 운동장을 스무 바퀴도 넘게 돌다/ 쓰러져 밤하늘을 보거나/ 밤이슬에 젖은 순천만 갈대숲에 나가/ 스산한 갈매기떼를 보’던 소년이 일주일째 포크레인 위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권선희)  
87 厭髑舍人廟/義天
임술랑
3780 2010-10-23
厭髑舍人廟 義天 千里歸來問舍人 靑山獨立幾經春 若逢末世難行法 我亦如君不惜身 - 東文選 천리를 돌아돌아 이차돈님 찾아왔네 푸른 산 우뚝 섰고 세월은 무장 무장 아아 어느 때 부처님법 흐려진다면 나 또한 그대와 같이 이 한 몸 바치리 - 譯 술랑 * 厭觸 (염촉)은 異次頓(이차돈 506-527)의 字(자)이며, 舍人(사인)은 염촉의 벼슬이다. ................................................................................................................................. (감상) 경주박물관, 이차돈의 이적을 새긴 빗돌에 그 떨어진 머리와 목에서 뿜어 나오는 핏줄기가 버드나무 가지처럼 뻗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놀라지 않았는가. 그 빗돌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있다. 몸을 던져 불법의 씨를 심을 줄 알았던 그. 오늘 대각국사 義天의 시를 읽으며 그 위대한 길을 다시 생각해 본다.(임술랑)  
86 다시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김재순
4590 2010-10-22
다시 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렇고 나약한 잡것들뿐 눈에 뛸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성운동가들이 저지른 일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핑게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 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야성의 남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게 휘말려 한 평생을 던져 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 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 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 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섭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16세기의 사내가 21세기 여자, 내 마음을 흔드는 아아 허균은 어디쯤 있나요. -김재순-  
85 엄마 / 정채봉
이종암
5522 2010-10-22
엄마 -정채봉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정채봉 시집『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샘터사,2000) ------------------------------------------------------------------------------------------ 나는 소설가가 시를 쓰는 일에 그다지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그러나 동화작가라면 다르다. 티없이 맑고 순수한 동심(童心)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살이의 이모저모를 찾아가는 일은 분명 시의 눈빛과 직방으로 통하는 일이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동화작가 정채봉의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읽으면서 나는 이것을 확인한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를 어머니로 생각하면서 커 왔다는 정채봉 시인. 자라면서 한 번도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던 그의 이 시집 속에는 유독 엄마 이야기가 많다. 목숨의 끝자락을 저 앞에 두고 있는 암투병 환자인 시인의 목소리여서 더욱 가슴을 시리게 한다. 이 시집은 정채봉 시인이 저승으로 떠난 다음해에 발간되었다. 나는 이 시집을 몇 해 전 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위해 포항에서 동해로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도중에 몇 번이나 시집을 덮고 창 밖 동해 푸른 물에 내 눈을 씻었는지 모른다. 작가 정채봉은 또 다른 시에서,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단 5분만이라도 휴가 얻어 오신다면 원이 없겠다 한다.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엉엉 울겠다고 한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가 계신 정채봉 시인, 그는 거기서 그렇게 불러보고 싶다던 어머니를 만났을까. 엄마 손잡고 엉엉 울었을까? -시인(이종암)  
84 가을 잠자리 / 조태일 movie
이종암
3782 2010-10-21
가을 잠자리 -조태일 몇날 몇 달 몇백 리 몇천 리의 허공을 날고 날았을까. 텅 빈 폐가의 늘어진 빨랫줄에 잠자리 한 쌍 앉아서 쉬고 있다. 투명한 그물맥의 날개를 이따금 이따금 떨면서 작은 더듬이로 이 세월을 더듬거린다. 그 큰 곁눈으로 할깃할깃, 익어가는 삼라만상을 담는다. 몇날 몇 달 몇백 리 몇천 리의 허공을 뚫고 날아서 저승으로 가려는가 세 쌍의 다리로 힘껏 이승을 박차고 자물자물 하늘로 날아간다 황금빛을 반짝이며. -『조태일 전집-시․2』(창비,2009) --------------------------------------------------------------------------------------------- 어저께가 조태일 시인이 돌아가신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조태일 전집』(전4권)이 창비에서 나왔다. 지난 어두운 시대에 그가 대응한 문학(시와 평론)의 빛깔은 불꽃같이 거침없는 언어와 섬세하고도 결 고운 들꽃의 언어였다. 바람 좋은 가을 날, 그가 남겨놓은 시집 속에서「가을 잠자리」를 다시 읽는 젊은 시인의 마음이 서늘하다. 텅 빈 폐가의 빨랫줄에 앉아 쉬고 있는 잠자리 한 쌍을 통해 생명(生命)의 본 모습을 그려내는 위 시의 내용은 참으로 무겁다. 익어가는 가을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담는 잠자리의 눈빛을 “할깃할깃”으로, 또 이승을 박차고 저쪽 하늘로 날아가는 잠자리의 모습을 “자물자물”로 표현한 의태첩어의 운용이 돋보인다. 생명(生命)이 나오고 들어가는 그 거리를 알지 못해 나는 아직도 세상을 더듬거리고 있다. “이승을 박차고/자물자물 하늘로 날아간” 그가 다시 그립다. -이종암(시인)  
83 바닷가 집 / 이세기
윤임수
3982 2010-10-20
바닷가 집 / 이세기 신발이 방문 쪽으로 가지런히 내여 있다 조금이라 뭍에 나갔는지 인기척이 없는 집 돌담 언저리엔 병구나무 어린 순이 자랐다 빗소리 잦은 날 할매 혼자 살고 있는 낡은 집에 들르면 약술이라며 갯국화주와 박대묵을 내줄 때가 있었다 빗소리 들으며 말동무가 되어준 적이 있었다 갈쿠리를 닮았다며 얼굴을 가리며 웃는 손 자글자글 쪼그라든 입에서 절름발이 딸아이 초산 얘기를 할 적에는 매년 이맘때쯤 온다는 뻐꾹새도 깃을 묻고 울어주었다 * 섬에서 혼자 사는 할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동무일 것입니다. 자글자글 쪼그라든 입으로 한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빗방울도 소리 낮추어 흐를 것입니다. 외롭지만 같이 도란거리는 풍경이 아름답게 들어옵니다. 뻐꾹새가 깃을 묻고 울어주는 절름발이 딸 이야기도 슬퍼서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함께 하기에 갯국화주가 참 맛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