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9호...
   2020년 05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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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11 노숙/ 김사인
김재순
3652 2010-12-28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마음은 몸으로하여 늘 떠돌고 몸은 마음으로하여 더욱 고단합니다 . 나도 묻습니다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은데, 어떤가 몸이여 -김재순-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110 삽 / 정진규 image
이종암
5020 2010-12-22
삽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서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정신규 시집『껍질』(세계사,2007) ---------------------------------------------------------------------------------------------------------------------------------------------------- 일찍이 ‘몸’과 ‘알’이라는 말로 한국 시단에서 독특한 자기 영역을 일궈간 정진규 시인. 그가 펴낸 시집『몸詩』(세계사,1994)『알詩』(세계사,1997)는 90년대 등단한 젊은 시인들의 시 쓰기의 참고서이자 필독서였다. 정진규의 산문시를 두고 김춘수 시인은「장수산」「백록담」의 1930년대 정지용의 산문시를 잇고 있는 것으로, 허만하 시인은 한국 산문시의 장인이라고 상찬한 바 있다. 정진규 시인이 이번에는 ‘삽’이라는 말의 발음 하나로 멋진 연애시 한 편을 일궈내고 있다. 그는 “땅을 여는 연장”인 ‘삽’을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라고 한다. ‘삽’이라고 소리 내어 읽어보자. 정말 그런 느낌이 절로 일어난다. 시인은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고 한다. 그 속에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고 하니 도저한 연애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연애는 언제나 미완의 것 아닌가.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는 시인 자신의 비유이겠다.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은 그 삽을 시인은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고 한다. 아, 종심(從心)의 나이 칠순을 넘어서고 있는 정진규 시인, 그는 아직도 청년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늘 싱싱한 푸른빛이 감도는 것인가. 땅을 열 듯 너를 열고 그 속에 내 무덤 하나 짓는 사랑을 나도 하고 싶다. -이종암(시인)  
109 그리움/ 이용악
김재순
5759 2010-12-21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용악 시인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벼랑, 소나무에는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눈이 쌓였고 그 아래로 백무선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그 기차를 언제 탈 수 있으려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조이는군요. -김재순-  
108 임시로 맛있는 집/김설희
임술랑
3696 2010-12-19
임시로 맛있는 집 김설희 청구아파트 앞 맛있는 집 쌈밥 된장찌개 내장탕 비지찌개 비빔밥.... 맛있는 음식을 배달도 한다 신축공사로 그 집이 뜯겨버렸다 길 앞 다른 건물에 간판 대신 현수막이 걸려있다 임시로 맛있는 집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소리씩 한다 임시로 맛있으면 언제쯤 제대로 맛있는 집이란 말인가 맛있는 집으로 완성되면 임시는 무엇으로 변할까 그 집에는 무엇이 있는지 때가 되면 사람들이 떼로 몰린다 임시로 맛있는 집 임시로 들락거리는 사람들 임시로 반가운 악수 임시로 벗어놓은 신발들이 임시로 북적인다 임시로 살고 있는 지구에 인간들이 풀들이 해가 달이 짐승들이 꽃이 바람이 임시로 맛있는 집안처럼 임시로 거처하는 지금 우주의 손바닥 위를 임시로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금속 저금통 안에 동전처럼 소란스럽다 임시로 맛있는 집이 진짜로 맛있는 집이 돼도 영원히 임시가 아닌 발밑이 흙이 그 속에 소란함이 진짜가 되어도 『숲문학』2010 ............................................................................................................... (감상) 실로 존재란 假有이며 幻有가 아닌가. 그 가짜로 있는 존재로서의 삶이 애끈하고 권태로운데, 거기 "임시로" 걸어 놓은 간판이 이 시 속에 사유를 불러 모운다.(임술랑)  
107 가야산 홍류동 바위 / 정희성 image
이종암
3812 2010-12-16
가야산 홍류동 바위 -정희성 세상이 다 떠내려갈 것 같네 온갖 시비 물소리로 재우며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 나지 않으리라구 바위에 새긴 孤雲*의 시구 물결에 지워졌네 말은 흘러가고 바위만 곧게 앉아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을 맞네 * 최치원의 호. -정희성 시집『詩에 찾아서』(창비,2001) ---------------------------------------------------------------------------------------------------------- 우리에게「답청」과「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로 잘 알려진 정희성 시인. 그는 분명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올해로 40년 시력(詩歷)의 중견 시인인데, 지금껏 그가 펴낸 시집은『답청』(샘터사,1974)『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비,19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창비,1991)『詩에 대하여』(창비,2001) 단 네 권뿐이다. 정희성 시인이 3시집 이후 10년 만에 펴낸, 그것도 43편의 시로 묶여진 4시집『詩에 대하여』에서「가야산 홍류동 바위」를 읽었다. 이 시는 신라 말기에 무너져가는 나라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 전방위로 애를 썼지만 반동 귀족 세력들의 반대로 그 시도가 좌절되자 가야산으로 입산해버린 고운(孤雲) 최치원의 삶에 기대고 있다. 특히 가야산 해인사 입구 홍류동 계곡과 그가 남긴 한시「題伽耶山讀書堂」,「入山詩」가 이 시의 배후(背後)에 놓여있다. 고운 최치원의 유(儒)․불(彿)․선(仙) 포함삼교(包含三敎)의 풍류도(風流徒) 정신과 뭇 생명을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큰 사상은 우리 민족의 정신으로 지금 새롭게 계승되고 있다. “말은 흘러가고/바위만 곧게 앉아”라는 시구는 객관적 실제를 기술한 것이겠지만 큰 사상과 간절한 마음이 어디 그리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인가. 정희성 시인이 이 시를 구태여 쓴 연유도 고운의 풍류도와 접화군생의 사상을 좇고 있음이리라. 그렇다. “말은 흘러가고”의 시구처럼 고운 선생의 말씀과 사상이 흘러 절망의 우리 사회에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새날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종암(시인)  
106 갓길 주막 / 고재종
김재순
4263 2010-12-11
갓길 주막 / 고재종 눈이 내리면 금방 어둑신해진다 주막집 흐린 유리창이 불그스레 번진다 떡가루 퍼붓듯하는 눈발을 뚫고 와 그 문을 미는 털벙거지가 있다 관솔이 타는 날로 위의 술국과 뜨건 소주 같은 욕쟁이 주모가 있다면 나도 그쯤에서 잠시 세상의 윗길 아랫길 다 지우리 오늘 밤 대숲에선 대깨나 부러지고 저 마을 몇몇 집의 구들장에선 오우우 오우우... ... 암여우 울음소리깨나 자지러지겠다 이제 겨울 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눈이 내려쌓여 입구를 막을 것이고... 오우우 오우우 한 시절 그렇게 지내도 좋을 것입니다. -김재순-  
105 천장 / 김수우 image
이종암
3528 2010-12-07
천장(天葬) -김수우 가끔 잡아먹은 산양에게 미안해서 평생 뜯어먹은 풀들한테도 빚이 많아 죽어선 고기가 된다 살점 쭉쭉 찢기며 한 입 양식이 되는 늘 조심스럽던 가슴 벽 뼈와 살 한 점 땅에 구르지 않기를 기도하던 아들 천장사(天葬師)가 건네는 무릎 뼈 한 조각 품고 돌아서면 땅바닥에 풀어놓은 마음을 들고 하늘 가득 날아오르는 어머니 살면서 서툴렀던 사랑, 죽어 새들에게 다 먹히고 나서야 완성되는 목숨이라는 집 땅으로 흐르는 하늘은 팔이 길고 하늘로 흐르는 땅은 날개가 크다 -김수우 시집『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시와시학사,2002) ----------------------------------------------------------------------------------------- 시인이면서 사진작가이기도 한 김수우가 지난 봄에 명상 산문집『白年魚』(심지,2009)을 펴냈다. 백 마리의 나무물고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의 발간과 함께 그는 부산에 ‘백년어서원’이라는 이름의 작은 북까페를 열어 도심 속에서 건전한 생활 문화 공간 건설과 그 향기를 퍼 올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김수우의 둘째 시집『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에서「천장(天葬)」이라는 시를 읽는다. 천장(天葬)은 티벳 사람들의 고유한 장례(葬禮) 의식이다. 그들은 이승에서 마지막까지 새들에게 육신(肉身)을 완전히 보시(布施)하고 다음 생(生)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승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하여 죄가 많은 사람들의 살과 뼈는 새들이 먹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위 시에서 시인은 “죽어 새들에게 다 먹히고 나서야” “목숨이라는 집”이 완성되는 것이라 한다. 나 죽으면 어느 바보 같은 새가 있어 내 뼈와 살을 거둬 줄 것인가. ‘목숨이라는 집’을 완성하지 못하고 구천(九泉)을 떠돌면 어쩌나. 우리는 여기 이 생(生)을 살아가면서 죄 짓지 말아야 한다. 남은 생을 그 동안 지은 죄를 씻으며 살아가야 하리. -이종암(시인)  
104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 박정대
김재순
4076 2010-12-05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헤르스의 책을 펼쳐놓고(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겠지만 내 고독이 만드는 음악을 저 홀로 알뜰히 듣는 밤은 또 오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대, 통속소설처럼 떠나간 그대는 또 다른 사람 품에서 사랑을 구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그대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나는 아프네, 때로는 그대와의 한 순간이 내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쥤으니 미안해하지 말게, 사랑이여,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에 대한 짧은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멸을 지녔네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와의 한 순간이 화석이 되어 천년으로 남고 싶었네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를 생각하는 오후는 그리움이 차올라 마음을 저미네 -김재순-  
103 길 / 차영호 movie
이종암
3674 2010-12-01
길 -차영호 십수년 찌든 벽을 도배하려고 액자를 떼어냈다 아하, 외줄로 뻗쳐있는 까만 길 우주에서 내려다본 만리장성 같다 담배씨같이 자잘한 개미들이 큰짐승 눈을 피해 숨죽이고 나래비 서서 다닌 고 작은 발자국들 세발세발 쌓인 길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는 차마고도 님 마중하는 꿈길마다 바윗돌 부서져 모래가 되었다는 옛 노래처럼 작은 빨빨거림이 몽쳐 우주를 꿰뚫은 노래 -동인지『푸른시 11호』(심지,2009) ------------------------------------------------------------------------------------------------------------ 포항에서 열정적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함께하는 시동인 ‘푸른시’의 동인지가 나왔다. 벌써 11호 째다. 포항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11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발간된 품격 있는 동인지『푸른시』, 그간 동인 활동의 노력과 그 결실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번 동인지에 수록된 64편의 푸른시 동인들의 작품들 가운데 차영호 시인의 신작「길」에 내 눈길은 오래 머물렀다. “십수년 찌든 벽을 도배하려고/액자를 떼어”내다 만난 “담배씨같이 자잘한 개미들”의 “까만 길”을 두고 “우주에서 내려다본 만리장성”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히말라야를 넘는 차마고도”로 읽어내는 시인의 눈길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또 사람을 두고 ‘큰짐승’이라고 명명한 것이나 일렬로 나란히 걸어가는 모양을 뜻하는 ‘나래비’라는 시어의 사용도 그러하다. 더욱 인상적인 구절은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개미들의 “고 작은 발자국들”의 “빨빨거림이 몽쳐” 새겨진 벽 위의 ‘까만 길’을 두고 “우주를 꿰뚫은/노래”한 것은 가히 폭발적인 상상력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영호 시인은 벽 위로 개미가 걸어간 흔적으로 남은 까만 줄 하나에다 자기 내면의 음률을 실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리라. 사물의 미세한 기척 하나에도 우주의 가락을 얹어서 노래하는 사람, 그가 바로 시인이다. -이종암(시인)  
102 카타콤베 / 김사이
김재순
4246 2010-11-28
카타콤베 김사이 막차를 타려고 뛰어가는데 지하도 큼직한 기둥들 사이로 웅크린 돌덩어리들 아니, 인기척을 내는 소름이 확 끼치는 거대한 짐승들 있다 순간 가슴 벌렁벌렁거리게 하는 이 고요 카타콤베 내 웃음의 이면이다 노동자도 수입하는 갖출 것 다 갖춘 불빛의 지하 지하의 지하 지하도 없는 지하 살아 있음을 한 끼니로 간청하다가 절망도 없이 잠을 청하는 이 곳을 지날 땐 순례자의 마음으로 하라 뼈다구만 남은 이상주의자들도 죄를 고백하며 걸어야 하는 카타콤베 내 등줄기에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혹처럼 자란다 나를 구역질한다. 김사이 시인은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사람의 무리를 보고 로마 초기의 지하묘지 카타콤베를 봅니다. 이들은 무엇을 피해 이곳에 몰려들었을까요 우리는 정말로 강줄기에도 유람선을 띄우고 희희낙락해도 되는지요. 김사이 시인은 자신을 반성하며 구역질을 합니다. 그런 사람 몇일까요 -김재순-  
101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이해리
임술랑
3932 2010-11-26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이해리 제 떠나 왔던 도래지로 날아가려는 겨울철새는 맹목적이다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나도 피하지 않는다 한마리 꼬까도요새가 비행기와 충돌했다 새의 몸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는 허둥 지둥 회항한다 조그만 새의 의지를 거대한 비행기가 꺽지 못하는 이유, 무어라 설명할까 조류 학자들은 인상 받기라 명명했지만 차가운 동체에 묻힌 한 점 혈흔의 가엾음으로 나는 그 맹목이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라 유추해 본다 총을 쏘고 경음기 폭음기 다 동원해도 청, 청, 청 푸른 하늘 들이 받으며 날아 오르는새, 그렇지 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 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들리고 안 보이는것, 안 보여서 그리운 사무침을 믿어 끝까지 행하는 것 지구의 반 바퀴나되는 비행거리를 찬날개 두 쪽과 가슴 오므려 붙인 가느다란 두 발이 전부인 行裝으로 날아가도 서럽지 않은것 그 망망한 외로움을 위해 한 목숨 분쇄되는 장애물도 두려워 않는것, 펄럭 펄럭 붉은 석양이 적시는 흰 가슴 날개로 제몸 매질하며 구만리 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 가는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 ............................................................................................................................................................... (감상)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가는 철새! 사람도 그리움에 미치면 로켓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달나라까지라도~.(임술랑)  
100 화살나무 / 손택수 image
이종암
5247 2010-11-23
화살나무 -손택수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동심원, 나이테를 품고 산다 가장 먼 목표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으니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하는, 시윗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산길 위에서 -손택수 시집『호랑이 발자국』(창비,2003) ------------------------------------------------------------------------------------------------------------------------ 그대는 화살나무를 아는가? 우리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박덩굴과의 나무로 잔 가지에 2-4개의 날개가 달려 있어 그 모양이 화살 같아서 이름 붙여진 화살나무. 이 화살나무를 가지고 손택수 시인이 짧은 그러나 매운 서정시 한 편을 썼다. 그 시를 읽으니 서정의 불화살이 내게로 날아오는 것만 같다. 이 시는 짧은 시이지만 그 짜임새가 아주 빼어나다. 1연의 내용이 화살나무의 모양새를 세밀하게 그려나간 묘사로 되어있다면 2연의 내용은 1연의 묘사로 뒷받침된 삶의 진실을 드러낸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묘사와 진술은 서로를 짝으로 하고 있어 각각 그 빛을 더욱 발하고 있다. 손택수는 우리네 삶은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멀어지는” 목표물(과녁)을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는 진리를 화살나무를 빌려 간명하게 묘파하고 있다. 그런데 3연의 시적 표현이 재미있다. 실로 거대한 묘사다. 작은 화살나무 가지에 대한 묘사와 진술로 시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거대한 산에 걸쳐져 있는 산길이 활의 시윗줄로 턱하니 앉혀놓고 있다. 그렇다. 1연과 2연의 시적 내용이 서정을 물고 있는 화살이라면, 3연의 내용은 그 서정의 화살을 날려줄 팽팽하게 당겨진 활줄 노릇을 하고 있다. 시가 참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이종암(시인)  
99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 / 공광규 [2]
김재순
4469 2010-11-19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 공광규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 문화일보 1996년 10월21일자 32면에 ‘고객과 함께 하는 세계로 미래로 - 삼성’ 이 전면 이미지 광고를 냈다 흰머리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간 막대를 안고 세상을 슬프게 응시하고 있다 영풍문고판 「TOEIC 超학습법」 48쪽에 실린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탱탱한 몸매로 번 재산을 기아의 아가리에 털어넣고서야 천사가 되다니 피부가 헌 가죽부대처럼 쭈글쭈글해져서야 아름다워지다니 평생을 거쳐 아무도 아무것도 제대로 사랑해보지 않은 나는 언제 나에게서 해탈하여 이 할머니처럼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화무십일홍인가요? 꽃이 피는 건 어려워도 지는 건 쉬운가요? 위의 시가 그 대답을 합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내가 빨려든 것은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헵번이었습니다. 그 매혹적이던 모습이 헌 가죽부대처럼 쭈글쭈글해져서야 정말로 아름다워졌고 이제는 다 흩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쿵쿵거리게 합니다. 헵번 여사의 사랑을 사랑하는 공광규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번져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아름다움의 강조점을 어디에 찍을까 망설입니다. -김재순-  
98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image
이종암
5108 2010-11-15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못하리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한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무늬의 숨결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 뜨면 여늬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송재학 시집『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민음사,1997) ------------------------------------------------------------------------------------------- 송재학의 셋째 시집『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에서 표제시인 이 시를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는다. 그렇게 소리 내어 거듭 읽다보면 나는 어떤 환상적이고 아늑한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환각이 일어난다. 이 공간은 그가 내 얼굴을 만지자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와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놓은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숲이다. 한 쪽마저 봉인된 절대의 공간, 여기서 그대와 나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나는 이 시를 읽어가다 한국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던 ‘중독’ ‘지독한 사랑’이라는 말들을 떠올렸다. 시의 내용은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연애(戀愛)가 틀림없지만, 그 연애의 향방은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통상적인 남녀(男女)의 사랑으로 읽든, 내 삶의 뿌리인 혈연(血縁)과의 깊은 사랑의 대화로 읽든 그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면 누구나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러나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시인마다 다르다. 송재학 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시를 나는 오래 읽었다. -이종암(시인)  
97 안개꽃 / 송기원
김재순
4241 2010-11-11
안개꽃 송기원 이제 알겠지 발아래 뿌리기 시작한 새벽안개가 네 비틀거리는 길을 지워버릴 때 주정뱅이로 객사한 아비와 술집 작부로 평생을 떠돈 어미가 네 지나친 길 위에 다시 살아올 때, 이제 비로소 알겠지 간밤에 네 속살 깊은 곳을 비집고 들던 한 사내의 살기와 굶주림이 뜬금없는 새벽안개로 피어올라 네 늦은 귀가를 막아서는 이유를 맺힌 게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밀착시켜 그들의 마음을 뭉텅이로 끌어내는 송기원 시인, 그래서 한 때 그에게 말려들었습니다. 새벽까지 흥청거리다가 문득 ,신산한 삶을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면 삶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삶이 앞을 막아서는 새벽안개 같은 것이라면 그 속에서 헤어나려는 몸짓의 기록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록상의 표현이 서툰 것 뿐 몸짓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재순-  
96 웃은 죄/김동환
임술랑
4465 2010-11-08
웃은 죄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감상) '자의와 타의' 이 시에는 자의가 없다. 타의에 의한 응대를 했을 뿐이요, 적의 없이 웃은 것 밖에 없다.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는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웃은 죄"밖에 없으므로, 웃은 것도 죄가 되나? 하고 반문하는 것도 같다. 당신이 지름길로 가서 어떤 급한 볼 일을 보지 않고 이 근처에서 머뭇거려도 나는 책임이 없다는 것, 한편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손 잡길래 그냥 뒀어요. 손이 따습데요." 하면서 "나는 모르오. 이게 죄가 되는지?" 아리송한 禪詩 같다.(임술랑)  
95 가을산 / 박진성
김재순
4345 2010-11-05
가을산 박진성 산의 이름은 적상(赤裳) 붉은 치마가 은유라면 그 속에 내 사랑하는 여자가 산다네 구중심처에서 울울창창 나무들을 거느리는 내 사랑하는 여자가 산다네 고봉준령을 다 품은 적요로움으로 있는 내 여자여 나 다시 태어나면 네 치마 속 고로쇠로 서 있으리 바람 탓이라고, 몸으로 농짓거리 하면서, 내 손바닥으로 슬쩍 네 하초를 더듬고 싶다 내 직립의 일생이 순전히 내 여자를 향한 발기이고 싶다 빳빳한 내 상상을 풍경으로 바꾸느라 온몸이 치마가 되었네 저도 그리 싫지는 않아서 붉게 물들었네 나 다시 태어나면 적상산 고로쇠로 서 있으리 病이 깊어 적상을 찾은 이에게 수액을 다 내주어도 좋겠네 만추입니다. 초록이 지쳐,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릅니다. 갈증으로 남아 있는 지나간 여름에 다 못한 말들을 마지막 불꽃 속에 던집니다. 그리고 그 불꽃 앞에서 다시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병이 깊어 찾아오는 사람에게 수액을 다 내주어도 좋겠다는 젊은 시인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았습니다. 오래된 내가 이제사.. -김재순-  
94 석류 / 조운 image
이종암
4184 2010-11-04
石榴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조운 기념사업회『조운 시조집』(작가,2000) ------------------------------------------------------------------------------------------------ 1900년 전남 영광 출신의 시조 시인 조운. 일제강점기에 항일민족주의자였던 그가 50세가 되던 1949년에 돌연 가족과 월북하면서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 시인 조운의 이름은 말끔히 지워졌다. 그러나 1947년 조선사에 간행된『조운 시조집』이 분단 50년이 지나서였지만 재간행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름이 유폐된 것을 안타까워하던 조운기념사업회가 주도하여 펴낸『조운 시조집』(작가,2000)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 인해 조운의 빼어난 시조 작품이 일반 독자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조운은 주로 단형 시조에서 그 빼어난 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의 단시조「古梅」가 이른 봄의 풍경을,「상치쌈」이 여름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라면, 위 시조「석류」는 가을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음이다. 석류를 의인화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가을의 한 풍경을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화자의 정서를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초장(1연)이 석류의 외양을 단순히 묘사하면서 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중장(2연)은 붉은 석류와 그 속 알알이 맺혀있는 석류 열매를 펼쳐놓음으로써 그 그림의 색칠을 완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완의 그림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있어야 한다. 시적 화자의 간절한 서정(임에 대한 붉은 그리움)을 폭발적으로 그려놓고 있는 종장(3연)이 바로 그것이다. “보소라 임아 보소라/빠개 젖힌/이 가슴.”의 반복과 도치법으로 표현된 종장이 보여주는 시적 미학은 가히 탁월하다. -이종암(시인)  
93 갈대는 배후가 없다 / 임영조
윤임수
4274 2010-11-03
갈대는 배후가 없다 / 임영조 청량한 가을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의 속된 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 들어 禪門에 들듯 젖은 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老後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댄 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 反骨의 同志가 있을 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 그리하여 이 가을 볕으로 바람으로 피를 말린다 몸을 말린다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해. *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에 대하여 잘 안다. 속을 비우면 존재조차도 홀가분하게 버릴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아직 그리하지 못한다. 그리할 수 없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고 좀 더 오래 그 길을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그러나,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저 꼿꼿한 老後”의 갈대는 절대로 기억에서 지우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되었을 때,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하여! (윤임수)  
92 오두막 집 / 이문구 image
이종암
4397 2010-11-02
오두막 집 -이문구 두 노인만 사시는 오두막집 밤 깊어 도란도란 누가 왔을까. 들리다 말다 무슨 얘길까. 별밖에 없는 외딴 마을에 잠 안 오는 두 노인 하고 또 하는 소리. -이문구 동시집『이상한 아빠1』(솔출판사,1997) ------------------------------------------------------------------------------------------------------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난 농촌과 도시 변두리의 고달픈 서민들의 삶을 독특한 충청도 사투리와 구어체의 긴 문장으로 리얼하게 그려낸 작가 이문구. 명천(鳴川) 이문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이문구 선생은『관촌수필』,『우리동네』『매월당 김시습』같은 소설집을 펴내면서 한 편으로 동시집도 여러 권 펴냈다. 오래 전『개구쟁이 산복이』(창작과비평사,1988)라는 동시집, 그리고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이상한 아빠1,2』(솔출판사,1997)를 펴내기도 했다. 위의 동시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집에 내놓아도 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길이가 짧고 내용은 단순해 보이지만 위 시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하루하루의 도시 생활에 얽매인 성인들에게 고향집을 홀로 지키고 계시는 노모를 생각나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도록 적시게 하는 어떤 시보다도 감동의 진폭이 큰 작품이다. "쉽고 소박하고 깨끗한 마음의 동시는 난해한 말과 지나치게 지적인 사상으로써 이루어진 성인의 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지적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잠 안 오는 두 노인/하고 또 하는 소리.”가 그립다. 오래 전, 고향집 뒷산으로 걸어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