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이덕규 시집『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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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내가 읽어본 이 세상 시인들의 첫 시집 가운데 <自序>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덕규의 첫 시집『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2003)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집 첫 페이지를 읽고 나서 내 몸으로 건너오는 감동 그 자체로 나는 몸을 부르르 떨어야했습니다. 오랫동안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지요. 이덕규는 지금 경기도 화성에서 시를 짓듯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사는 시인입니다. 시「어처구니」는 그가 농사(農事) 체험에서 얻은 작품이지요. 이른 봄날 마늘밭에서 비닐을 걷다가 노란, 어린 마늘 싹에 맺힌 이슬을 손끝으로 건드린 것에서 시의 내용이 만들어졌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시적 표현이 상당히 성적(性的)이고도 속(俗)됩니다. 그리고 그걸 뛰어넘어 생명(生命)의 기운이 넘치고 있는 작품입니다.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는다고 늘어놓은 시인의 엄살 섞인 너스레가 하나도 밉지 않습니다. ‘어처구니’가 뭔지는 아시지요? 이덕규의 재미있는 이 시에 나는 그저 “한바탕 잘 젖었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