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74년 11월 18일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가 출범과 함께 문인 101인 선언을 할 때 스물여섯의 나이에 가장 막내로 참여했습니다. 38년이 지나 이순을 넘겨 작가회의의 대표를 맡게 된다는 데 우선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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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시영(63) 시인은 문단 초년병 시절 맺었던 자실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이사장을 맡게 된 특별한 감회를 전했다.

선배 염무웅의 부름을 받고 나와 문인 101인 선언의 플래카드를 들었던 등단 5년차의 시인이 38년 후 그렇게 탄생한 단체의 장을 맡게 되었으니 소회가 남다를 법도 하다.

이날 선임된 새 임원진 가운데에는 이 이사장 외에도 작가회의와 20대 시절 특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소설가 공지영 씨. 공씨는 군부정권의 탄압 속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자실이 1984년 재창립했을 때 '최초의 유급 간사'로 5개월간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시영 이사장과 공지영 부이사장이 11일 총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났다.

"한 발 한 발 걸어오다보니 이 자리까지 왔네요. 1974년 당시 대학원생 신분으로 송기원과 나가서 플래카드를 들다 연행됐는데 마침 가방에 월북시인 이용악을 연구한 논문이 들어있어서 경찰서에서 더 문제가 됐었죠."(이시영)

"전 첫 직장이 자실이었어요. 그때 최저 임금이 월 12만 원이었는데 전 10만 원을 받았다가 나중에 투쟁해서 12만 원으로 올려받았죠.(웃음) 다시 와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때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늙어가는 것을 보니까 명절 때 고향에 오는 기분이에요."(공지영)

공씨는 창비 등단 시절부터 편집자와 작가로 인연을 맺어온 이 시인에 대해 "일을 꼼꼼하게 잘하고 추진력 있으면서도 폼 잡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라며 "꼭 한 번 해야 한다면 이시영 이사장 체제에서 작가회의 일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실무에 강하다는 공씨의 평가대로 이 이사장은 임기 중 추진할 신규 사업 계획도 구체적으로 구상 중이다.

"서울시에 ▲서울시 출신 문인들 선양 사업 ▲근대문학관 건립 ▲문학전문도서관 건립 ▲서울시 문학지도 제작 등의 사업을 제안한 상태입니다. 특히 김수영, 이상, 염상섭, 박태원 등 다른 지역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서울 출신 문인들을 기리는 사업을 꼭 추진했으면 합니다."

이 이사장은 또 문인 단체의 본분에 맞게 창작활동을 기반으로 하면서 자발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창작활동을 하는 문인은 각자 하나의 정부나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문학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문학인의 본분을 강조한 이 이사장은 공씨가 고민 끝에 부이사장직을 맡은 것을 의식해 부담을 덜어주려드는 듯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씨는 오히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불러달라"고 활동에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