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138번째 선언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박근혜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100퍼센트 대한민국’,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시대교체’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당선인 대국민 인사에서는 화해와 대탕평책을 통해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듬어 모두가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선거 이후의 상황은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서 ‘화해’의 시대를 열겠다는 당선자의 의지를 선뜻 신뢰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가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몇몇 노동자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행복’을 약속했던 정치세력은 동요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인수위원회의 인사를 둘러싸고 들려오는 잡음은 ‘화해’와 ‘100퍼센트’라는 약속이 한낱 정치적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의심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선거 기간에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과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다수의 국민들은 이것이 긴 ‘겨울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신문매체에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실무를 맡은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은 비록 한 명의 작가를 고발했을 뿐이지만 경찰조사가 끝나면 나머지 136명도 모두 같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당 ‘선언문’의 형식을 띤 광고 중에 ‘독재자’,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린다.’,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라는 부분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라는 문학인들의 선언이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상황을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때문에 생긴 선거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견제를 봉쇄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탄압이라고 판단한다.

 

  문학은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며 성장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문학’도 없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은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왔고, 그 긴장을 자양분으로 삼아 창조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중요한 역사의 장면들에 문학인들이 깊이 관여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정치적 행보는 비단 특정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모든 권력적인 것에의 저항을 통해서 ‘자유’를 호흡하려는 외침이었다. ‘자유’의 공기를 들이마신 문학인들의 ‘기침’, 그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불러왔거니와, 그것은 창작에의 자유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당히 누려야 할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정 후보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상태로 ‘정권 교체’와 ‘삶의 가치’를 주장한 문학인들의 진의를 현실 정치의 논리로 재단하여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주의의 시간을 되돌리는 반(反)역사적인 구태에 불과하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문학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즉각 취하할 것과 검찰이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넓은 안목을 갖고 판단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화해’와 ‘통합’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낡은 구호 이상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은 그 선언문에 서명한 137명의 문인들이 같은 뜻을 지녔던 문학인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해 동참하지 못한 수많은 문학인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기꺼이 138번째 선언자가 될 의사가 있다.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이 유독 추운 것은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울산과 평택의 송전탑 위에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함께 살자”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이들의 삶에 희망을 드리우지 못하는 한 ‘100퍼센트 대한민국’은 또 다른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화해’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헌법적 권리에 따른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권력기관의 압력에 의해 저지당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12년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