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칠성(鄭七星)

 

 

나의 님은 조선 강토(疆土)이어요

 

집안이 가난하여 식구들이 배고프니

일곱 살에 어린 기생이 되어 가무로 생계를 이어갔어요

 

달밤에 세찬 바람이 가슴을 치고

절망이 소리 높여 가야금을 켜니

나라 잃은 설움이 밤하늘을 찔렀지요

 

스물두 흥분에 넘쳐 삼일운동에 만세를 불렀어요

기름에 젖은 머리를 그날로 이별했어요

민족이 애인이 되었고 제가 섬겨야 하는 주인이 되었어요

침략자의 노략질이 심한데

이상 풍류로 고운 목소리를 없었어요

 

나는 조선의 피와 살로 생겼으니

이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살아가겠어요

 

영어교습소에서 어학을 배우고 타자를 배웠어요

‘무궁화 자매 모임’에서 재봉과 자수, 편물을 가르쳐

여성의 진정한 독립의 틀을 닦았지요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해야 했어요

유약한 내부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했어요

대구여자청년회를 결성하여

여자들도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했지요

여성의 인권은 여성이 힘써 이룩해내야 하는 일이고

대구여자청년회, 조선여성동우회, 근우회는

민족독립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길이었죠

 

당당한 여성이 되는 길이

일제를 몰아내는 길이 된다는 것이었지요

진정한 독립은 노동자를 자본에서 해방시키는 일이고

여성이 남성에게서 해방되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독립의 틀을 다져갈수록

일본경찰의 가혹한 탄압이 이어졌어요

이유 없는 검거에 시달려도

단단해지고 운동에 집중했어요

 

배고픈 어린 기생이었던 제가

독립투사가 되어 전국을 순회하고

조선의 진정한 딸로 다시 태어나는 나날을 보냈어요

나의 님은 조선 강토(疆土)이니까요.

 

진정한 해방을 위해

조롱과 멸시도 님을 위한다면 달게 받았어요

 





 양파의 다른 얼굴

 

 

양파껍질 벗기다 보면

파란만장과 마주친다

 

하얀 갈피마다 멍든 가슴 개씩 숨어서

매운 눈물 삼키고 있다

짓눌린 어제들이 진물을 흘린다

 

양파를 벗기는 일이 고통과 마주하는 일이 되다니.

돌아 시장에서 만난

매끈하고 고운 양파는

 

무시무시한 비밀을 켜켜이 숨기고

지독히 매운 냄새를 풍긴다

반짝이는 새하얀 피부 뒤에 끔찍한 사실들이

포진해 있다

 

노조결성을 방해하는 폭력의 시간들

회유와 협박, 거짓과 조작,

폭행과 해고의 무서운 그늘

 

양파가 거대한 폭력의 숨겨진 은신처라니.

 

 

 

 

권순자/1986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 《심상》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청춘 고래』등이 있음. 한국작가회의회원

 

이메일: lake479@hanmail.net